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다

말라기 1:1-5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주님 밖에 그 어느 누가

시편 18:31-50

  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1.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2.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3.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4.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5.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2.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5.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1.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2.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3.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4.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 2:37-42

초대교회의 모습

이 단란을 통해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회개로 돌아선 이들이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새로운 가족으로 하나가된 성도들은 크게 네 가지의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첫째,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도들을 통하여 배우려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돌아가야할 것입니다.

둘째, 교제하는데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을 만나기를 힘 썼고, 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도전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 감사를 나누고,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셋째, 같이 떡을 떼었습니다. 당시의 예배는 가정예배였기 때문에, 식사자리와 함께 성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식사와 함께 성찬을 나누며 예수님을 기억하고, 부활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넷째, 기도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 기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룹으로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더 알기위해, 더 닮아가기 위해, 더 감사하고 기억하기 위해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와 예배와 배움들이 예수님을 더 알고, 더 닮아가고, 더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만군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구라도 시온을 대적하면 용서하지 못할 만큼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3나 주가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4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예루살렘 광장에는 다시, 남녀 노인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쉴 것이며, 사람마다 오래 살아 지팡이를 짚고 다닐 것이다.
5어울려서 노는 소년 소녀들이 이 도성의 광장에 넘칠 것이다.
6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살아 남은 백성이 이 일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야 놀라운 일이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7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내 백성을 구해 동쪽 땅과 서쪽 땅에서 구원하여 내겠다.
8내가 그들을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겠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성실과 공의로 다스리겠다.

스가랴 8:1-8

사랑이라는 그 부자연스러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반복적으로 고백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경험했고, 경험하고 살아온 개념인대도 불구하고 성경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들이 내가 경험한 그 '사랑'처럼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이 문장들을 교회에서 수 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여전히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과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고귀해서일까 아니면 우리의 사랑이 너무 작고 비천해서일까. 아마도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3절에서 사시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다고 하셨다. 사랑하면 같이 살게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살다가보면 닮아가고 서로의 모습을 배우게되어 점점 상대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룩한 산' (3절)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은 "천지창조" 와 같은 거창한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 오히려 같이 살아갈 집안을 "꾸미는" 일에 가깝다. 못 박고, 시계달고, 줄자를 들고, 청소를 하는 따위의 일들 말이다.

6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 날이 오면...그것이 나에게 놀라운 일이겠느냐?" 맞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는 일이 어찌 놀랄 일이겠는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신앙' 이라는 조금은 정형화된 단어보다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감정'과 같은 자연스러운 단어로 더 잘 표현되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문장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읽히기를 바래본다.

1 내가 또 고개를 들고 보니, 내 앞에서 두루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2 그 천사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였다.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길이는 스무 자이고, 너비는 열 자입니다."
3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온 땅 위에 내릴 저주다. 두루마리의 한 쪽에는 '도둑질하는 자가 모두 땅 위에서 말끔히 없어진다'고 씌어 있고, 두루마리의 다른 쪽에는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가 모두 땅 위에서 말끔히 없어진다'고 씌어 있다."
4 만군의 주의 말이다. "내가 저주를 내보낸다. 모든 도둑의 집과 내 이름을 두고 거짓으로 맹세하는 모든 자의 집에 저주가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면서, 나무 대들보와 돌로 쌓은 벽까지, 그 집을 다 허물어 버릴 것이다."

스가랴 5:1-4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거룩

스가랴 3장에서 우리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봤다. 하나님은 "새싹" 이라고 부르는 나의 종을 보내어 모든 죄를 단번에 없애시겠다고 하셨다. 우리의 죄가 없어지고 깨끗하게 되는 내적인 거룩 말고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거룩은 분명히 외적인 요소들을 포함한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통해 자세히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이나 삶의 모습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과 교류들 또한 거룩해야함을 누누히 강조하고 계신다.

오늘 본문에서는 공동체 안에 있는 '도둑질하는 자'들과 '거짓으로 맹세하는 자'에 대한 특별한 경고를 하신다. 왜 도둑질과 거짓맹세가 하나님이 특별히 다루실만한 포악한 일일까? 잘 생각해보면 도둑질과 맹세를 통해 누군가는 얻지 못할 것을 얻게된다. 능력 밖의 것 혹은 기회 밖의 것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그 욕심, 탐욕, 거짓을 싫어하신다.

내 안에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 공동체 안에서의 욕심과 탐욕과 거짓이 없는 모습이 하나님이 메시아를 예언하시며 언급하실만큼 중요한 성도들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1 내가 고개를 들어 보니, 측량줄을 가진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
2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예루살렘을 재서,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고 간다."
3 그 때에 내게 말하는 천사가 앞으로 나아가자 다른 천사가 그를 맞으려고 나아와서,
4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알려라. '예루살렘 안에 사람과 짐승이 많아져서, 예루살렘이 성벽으로 두를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다.
5 바깥으로는 내가 예루살렘의 둘레를 불로 감싸 보호하는 불 성벽이 되고, 안으로는 내가 그 안에 살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6 어서 너희는 북쪽 땅에서 도망쳐 나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하늘 아래에서 사방으로 부는 바람처럼 흩어지게 하였지만, 이제는 어서 나오너라. 나 주의 말이다.
7 바빌론 도성에서 살고 있는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오너라!'"
8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나에게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기시고, 너희를 약탈한 민족에게로 나를 보내시면서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손대는 자는 곧 주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
9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치면, 그들은 저희가 부리던 종에게 노략질을 당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0 "도성 시온아,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라. 내가 간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 나 주의 말이다."
11 그 날에, 많은 이방 백성들이 주님께 와서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면서, 너희와 함께 사실 것이다. 그 때에야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2 주님께서는 그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것이며, 예루살렘을 가장 사랑하는 도성으로 선택하실 것이다.
13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은 주님 앞에서 잠잠하여라. 주님께서 그 거룩한 거처에서 일어나셨다!

스가랴 2:1-13

나와 살겠다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출애굽의 불기둥을 연상시키는 "불"에 대해 언급하시며, 너희들을 둘러싸고 보호할 것이고, 내가 그 성안에 거하면서 "같이" 살겠으니 어서 "빠져 나오라"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 포로된 곳에서 "나오라!" 라고 외치시는 목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죄 가운데에서 나오라고 외치시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음성에 반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우리 가운데 주님의 임재가 있을까? 나를 불로 두르시고, 내 안에 사시면서 영광을 발하시는 삶. 나와 살겠다 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하겠다.

노래하자

본문에 표현된 하나님의 음성은 격양되고 기쁨으로 흥분된 톤으로 느껴진다. "기뻐하며 노래를 불러라!" "내가 간다~~~~~~" 읽기만 해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우리가 일어나 기쁨의 찬양을 드릴 이유는 분명하다. 주님이 오시기 때문이다. 나에게 찾아오시고 찬양 받으시고, 함께 하시며, 특별한 소유를 삶으실 하나님께서 그 거룩한 거처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도 주님을 맞으러 가즈아~~~~~~~

7 다리우스 왕 이년 열한째 달에, 곧 스밧월 스무나흗날에, 주님께서 잇도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 예언자에게 말씀하셨다.
8 지난밤에 내가 환상을 보니, 붉은 말을 탄 사람 하나가 골짜기에 있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 사람 뒤에는 붉은 말들과 밤색 말들과 흰 말들이 서 있었다.
9 그래서 내가 물었다. "천사님, 이 말들은 무엇입니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였다. "이 말들이 무엇을 하는지,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그 때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그 사람이 말하였다. "이 말들은 주님께서, 온 땅을 두루 다니면서 땅을 살펴보라고 보내신 말들이다."
11 그리고 말에 탄 사람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주님의 천사에게 직접 보고하였다. "우리가 이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살펴보니,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였습니다."
12 주님의 천사가 주님께 아뢰었다. "만군의 주님,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렵니까? 주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신 지 벌써 칠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13 주님께서는 내게 말하는 천사를 좋은 말로 위로하셨다.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일러주었다. "너는 외쳐라.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몹시 사랑한다.
15 그러나 안일한 생활을 즐기는 이방 나라들에게는, 크게 화가 난다. 나도 내 백성에게는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데, 이방 나라들은 내 백성을 내가 벌주는 것보다 더 심하게 괴롭힌다.
16 그러므로 나 주가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으로 이 도성에 돌아왔다. 그 가운데 내 집을 다시 세우겠다. 예루살렘 위에 측량줄을 다시 긋겠다.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17 너는 또 외쳐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 성읍마다 좋은 것들로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다시 한 번 시온을 위로하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내가 택한 내 도성이 될 것이다.'"

스가랴 1:7-17

조용하고 평안하였습니다

스가랴에게 환상으로 예언이 임했다. 붉은 말에 탄 천사와 그에게 보고하는 다른 말들을 탄 보고자들과 주님 사이의 대화를 보여준다. 보고자들은 천사에게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하였다고 보고를 하는데, 조금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불안한 정세 속에서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가 분열의 조짐을 보이자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유다땅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리우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정세는 안정되고 이 "조용하고 평안한" 상태는 좋은 소속이 아닌, 나쁜 소식으로 표현되어 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다시 그리고 다시

보고자들은 주님께 언제까지 이 악한 자들에게 참으실 것인지를 호소하는데,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고, "다시" 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면서, 회복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다시 세우시며," "다시 풍성하게 하시며," "다시 위로하시고," "다시 택하시는" 분이시다. 어둡고 내리막길 이라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1요나는 이 일이 매우 못마땅하여, 화가 났다.
2그는 주님께 기도하며 아뢰었다. "주님,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서둘러 스페인으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주님,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주님께서는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하고 책망하셨다.

요나 4:1-4

나의 하나님?

요나가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자. 그들은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로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요나는 하나님께 불평하며, "주님 이렇게 될 줄 알고 제가 스페인으로 달아난 것입니다" 라고 기도한다.

요나는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노하지 않으시고, 사랑이 한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그런데 그 하나님은 성품은 자신,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되는 성품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온 백성의 하나님이시다. 허나 우리는 항상 나를 잘 되게하시고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 잃은 양 하나를 찾으시듯이.

요나는 또한 그 광경을 보고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한다. 하나님은 물고기로 그를 살리시고, 니느웨 사람들을 살리려고 하시는데, 요나는 목숨을 거두어 달라 말한다. 시편 기자의 고백을 되새겨야 하는 대목인 것 같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시편 118:17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다하여 찬양하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높이기를 원하신다. 그 삶을 예배라고 하신다.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 또한 사랑하시고,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1주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3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욥바로 내려갔다. 마침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를 만나 뱃삯을 내고, 사람들과 함께 그 배를 탔다.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갈 셈이었다.
4주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태풍이 일어나서,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
5뱃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마다 저희 신들에게 부르짖고, 저희들이 탄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에 실은 짐을 바다에 내던졌다. 요나는 벌써부터 배 밑창으로 내려가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6마침 선장이 그에게 와서, 그를 보고 소리를 쳤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잠을 자고 있다니! 일어나서 당신의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라도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준다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
7뱃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가 어서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리는지 알아봅시다."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그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다.
8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말하시오.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렸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느 나라 사람이오? 어떤 백성이오?"
9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10요나가 그들에게, 자기가 주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겁에 질려서 그에게 소리쳤다. "어쩌자고 당신은 이런 일을 하였소?"

요나 1:1-10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요나는 선지자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는 사람. 그런 요나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을 본다. 요나 뿐만 아니라, 모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인들' 이라 여기던 앗수르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하셨을 때에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앞서, 선악의 문제로 시선을 옮긴다.

하나님은 선과 악으로 인간을 구분하신 뒤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다고 종종 생각한다. 성경에서 선과 악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기준이지, 사랑을 받고 못 받고의 기준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사람은 왜 반대로 향할까

요나는 언급했듯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였는데도, 하나님의 뜻에 반대로 향해 나아간다. 앗수르와 위치상 정반대인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배에 오른다. 스페인이 그 당시에 땅 끝이라고 인식되었던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뜻에 반해 정말 끝장까지 가겠다는 마음이다.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뜻을 비슷하게 타협하면서 가는 것조차도 우리는 쉽지가 않은 존재들인 것 같다. 심지어 요나는 "뱃삯을 내고," "사람들과 함께' 배에 올라탄다. 우리가 흔히 저지라는 일이 아닌가? 나의 가진 것을 투자까지 해가면서 (손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같이 휩쓸려서 하나님의 뜻 반대로 나아간다. 요나를 통해 우리를 본다.

하나님을 믿는 불순종

요나는 하나님을 분명 믿는다. 그렇기에 자기에게 임할 "화"를 인지하고 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심지어 잠까지 잔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불순종이 있을 수 있는가? 답은 Yes 이다. 우리에게 빈번히 일어난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요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가진 것들을 바다에 "내 던지게" 된다. 그 뿐인가? 요나는 곧 자신이 물 밖으로 던져지게 된다. 우리는 믿음이 단지 무언가를 있다고 믿는 것을 넘어, 순종이라는 가치를 포함한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7보아스는 실컷 먹고 마시고 나서, 흡족한 마음으로 낟가리 곁으로 가서 누웠다. 룻이 살그머니 다가가서, 보아스의 발치를 들치고 누웠다.
8한밤중이 되었을 때에, 보아스는 으시시 떨면서 돌아눕다가, 웬 여인이 자기 발치께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9"누구요?" 하고 물었다. 룻이 대답하였다. "어른의 종 룻입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 어른이야말로 집안 어른으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이십니다."
10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이봐요, 룻, 그대는 주님께 복받을 여인이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지금 그대가 보여 준 갸륵한 마음씨는, 이제까지 보여 준 것보다 더욱더 값진 것이오.
11이제부터는 걱정하지 마시오, 룻. 그대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소. 그대가 정숙한 여인이라는 것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소.
12내가 집안간으로서 그대를 맡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소. 하지만 그대를 맡아야 할 사람으로,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한 사람 있소.
13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고, 날이 밝거든 봅시다. 그가 집안간으로서 그대를 맡겠다면, 좋소.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그 때에는 내가 그대를 맡겠소. 이것은 내가,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오. 아침까지 여기 누워 있으시오."
14룻은 새벽녘까지 그의 발치에 누워 있다가,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이것은 보아스가, 그 여인이 타작 마당에 와서 있었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15보아스가 말하였다. "걸치고 있는 겉옷을 이리 가지고 와서, 펴서 꼭 잡으시오." 보아스는, 룻이 겉옷을 펴서 잡고 있는 동안, 보리를 여섯 번 되어서 그에게 이워 주고는 성읍으로 들어갔다.

룻기 3:7-15

룻의 선택은 비상식적이다?

룻이 모압 사람, 즉 이방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낯선 땅에 온 것, 시어머니가 떠나가라 하는데도 따라오는 것, 그리고 시키는데로 또 보아스의 발치에 가서 누워 결혼해 달라고 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식적'인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상식 (common sense)'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이상 (ideal)' 이 공존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상식을 초월하는 이상향이 존재합니다. "사람을 기쁘게하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랴"는 사도들의 외침도 생각이 납니다. 룻은 확실히 비상식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범위를 아래가 아닌 위쪽으로 벗어난 것일 것입니다.

감히 멈출 수 없는 사랑

룻기는 메시아와 메시아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관계를 잘 그려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을 룻기를 통해 봅니다. 그렇게 나아갈 때에, 메시아를 예표하고 있는 보아스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unstoppable) 사랑을 시작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룻을 향해 달려 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을 택할 때에, 하나님은 감히 어느 것도 멈출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이방인 우리들

위에서 언급했듯이, 룻은 모압 이방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적나라하게 말하면 그냥 쓰레기 취급해도되는 대상입니다. 보아스는 그러나 그녀의 삶의 태도를 이미 알고 있고, 그 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11절)" 있습니다. 룻은 이방인이지만 빛입니다.

우리는 이방인으로써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저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라고 불러 주신 것입니다.

1나오미에게는 남편 쪽으로 친족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엘리멜렉과 집안간으로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
2어느 날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그래, 나가 보아라."
3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4그 때에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읍에서 왔다. 그는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기를 비네" 하면서, 곡식을 거두고 있는 일꾼들을 격려하였다. 그들도 보아스에게 "주님께서 주인 어른께 복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5보아스가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저 젊은 여인은 뉘 집 아낙인가?"
6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가 대답하였다. "저 젊은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사람입니다.
7일꾼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곡식단 사이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더니, 아침부터 와서 지금까지 저렇게 서 있습니다. 아까 여기 밭집에서 잠깐 쉬었을 뿐입니다."

룻기 2:1-7
  1.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것과는 다르다. 어려움을 많이 겪으며 산 민족이라 그런지 우리는 벼를 베다가 한 줌만 떨어뜨려도 얼른 주워 담을 것인데,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 심지어 동물들을 위해 수확하다가 흘린 것, 그리고 모퉁이에 베기 어려운 것들을 남겨놓으라 명하셨고, 오늘 본문에서도 룻이 그렇게 떨어진 것들을 줍는 것을 보게 된다.
  2. Generosity. 관대함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갖추어야할 큰 덕목임이 분명하다. 어렵지만, 우리는 받는 신앙 보다는 주는 신앙인들이 되어야함이 마땅하겠다.
  3. 룻과 보아스의 만남이 본문에 그려지는데, 룻이 간 밭은 "우연히"도 보아스의 밭이었다. 그리고 그 때에 "마침" 보아스가 밭에 와 일꾼들을 격려하다가 룻을 목격하게 된다.
  4. 성경은 이렇게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문제는 예정과 예지의 신학의 근간이 되기도하는 어려운 문제다. 논란을 넘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세계에 관여하시며, 그 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삶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다.

1사사 시대에 그 땅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유다 베들레헴 태생의 한 남자가, 모압 지방으로 가서 임시로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2그 남자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서, 에브랏 가문 사람인데, 모압 지방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살았다.
3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았다.
4두 아들은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룻이고, 또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바였다. 그들은 거기서 십 년쯤 살았다.
5그러다가 아들 말론과 기룐이 죽으니, 나오미는 남편에 이어 두 아들마저 잃고, 홀로 남았다.
6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7나오미가 살던 곳을 떠날 때에, 두 며느리도 함께 떠났다.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룻기 1:1-7
  1. 룻기의 시작은 나오미와 그의 남편 엘리멜렉이 왜 모압땅에 가게되었는지를 설명하며 시작됩니다.
  2. 흔히 남녀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결혼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증가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둘이 건너간 모압 땅에서 네 식구가 된 가족은 엘리멜렉이 죽고 셋이 되었다가, 다시 다섯으로 증가하는 듯 하더니, 두 아들이 죽고 셋으로 다시 즐어 듭니다.
  3. 그리고 나오미는 이제 혼자가 되려고까지 합니다.
  4. 이스라엘땅에 흉년이 들어 모압땅에 왔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증가 보다는 감소를 경험합니다. 그러던 중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시어" 풍년이 들었다는 것을 나오미가 듣게되고, 삶을 방향을 다시 그쪽으로 정렬하게 됩니다.
  5. 삶에는 감소가 일어날 때가 항상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려고 삶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여전히 감소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6. 우리는 "돌보시는" 주님께로 우리의 시선과 삶을 고정해야할 줄로 믿습니다.
  7. 주님은 증가의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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