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QT - 2019년 12월 18일

1만군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구라도 시온을 대적하면 용서하지 못할 만큼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3나 주가 말한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왔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4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예루살렘 광장에는 다시, 남녀 노인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쉴 것이며, 사람마다 오래 살아 지팡이를 짚고 다닐 것이다.
5어울려서 노는 소년 소녀들이 이 도성의 광장에 넘칠 것이다.
6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살아 남은 백성이 이 일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야 놀라운 일이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7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가 내 백성을 구해 동쪽 땅과 서쪽 땅에서 구원하여 내겠다.
8내가 그들을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겠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성실과 공의로 다스리겠다.

스가랴 8:1-8

사랑이라는 그 부자연스러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반복적으로 고백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경험했고, 경험하고 살아온 개념인대도 불구하고 성경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들이 내가 경험한 그 '사랑'처럼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이 문장들을 교회에서 수 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여전히 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삶과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고귀해서일까 아니면 우리의 사랑이 너무 작고 비천해서일까. 아마도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3절에서 사시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다고 하셨다. 사랑하면 같이 살게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살다가보면 닮아가고 서로의 모습을 배우게되어 점점 상대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룩한 산' (3절)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은 "천지창조" 와 같은 거창한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라, 오히려 같이 살아갈 집안을 "꾸미는" 일에 가깝다. 못 박고, 시계달고, 줄자를 들고, 청소를 하는 따위의 일들 말이다.

6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그 날이 오면...그것이 나에게 놀라운 일이겠느냐?" 맞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는 일이 어찌 놀랄 일이겠는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신앙' 이라는 조금은 정형화된 단어보다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감정'과 같은 자연스러운 단어로 더 잘 표현되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문장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읽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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