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바울과 그의 팀이 에베소에서 긴 시간 머물며 성공적으로 사역을 해나갔다.
- 사람들이 자복하며 회개하고, 자신의 이익을 찾지 않고 마법책을 태우며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 모습을 본다.
-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이제 에베소를 떠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떠나가려는 상황에서 큰 대적이 일어난다.
- 오늘은 이 본문을 통해 복음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한다.
본론
복음의 큰적
아데미 신전
- 아데미 신전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훨씬 크고 그 크기가 가로 120미터에 세로 70미터 높이 20미터에 이르는 건물이다.
-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을 정도로 이 아데미 신전의 위용은 대단했다.
- 아데미여신은 풍요의 신이고, 다산의 상징이고, 신들 중에서도 신이여서, 많은 이들이 찾고, 섬기는 신이었다
복음의 큰 적
- 이러한 신이었기 때문에, 그에 연관된 사업들도 자연스럽게 번창하게 되었는데, 신전 자체가 은행과 금융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많은 돈 들이 그곳에 예치되고, 빌려주는 등의 사업이 행해졌다.
- 비단 에베소만의 행태는 아니었다. 잘 알듯이 예루살렘 성전도 그러한 일들이 행해졌던 것을 잘 알고 있다.
- 그리고 신전 주변 땅과 건물들이 예속되면서, 신전 자체가 큰 비지니스의 중심역할을 했다.
- 그것 뿐만 아니다, 어떤 종교던지, 신의 모형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그리고 그것을 모시는 일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유력한 신의 모형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번창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바울이 에베소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전체 도시에 신은 한 분 밖에 없으니 우상을 멀리하라고 전도를 하니, 에베소에서 우상 모형을 만들어 팔아 풍족하게 살던 직공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 바울이 가는 곳마다 부딪힌 반대세력의 저의는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질투심이고 또 하나는 재물이다.
-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인기를 빼앗기는 것을 질투해 극력히 반대했고, 마술을 행하는 이들이나, 오늘 본문에서 처럼 직공들은 재물 문제로 반대를 했다.
두 주인은 섬길 수 없다
- 재물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 예수님도 재물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고 강력한 것인지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 이라고 표현하시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 재물은 섬기는 것이 아닌, 다스리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데, 돈이 손에 들어오면, 무언가를 살 것, 먹을 것을 생각해 내서 돈을 써버리고 만다. 이건 이미 돈의 노예다.
- 이것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소비형태가 아닌, 돈이 나의 소비형태, 삶의 형태를 결정함으로써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심자들의 마음 속 영적 전쟁
-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이러한 반대세력이 일어나는 것처럼, 복음이 있는 곳에는, 복음에 반해서 우리의 자아, 우리의 육이 원하는 것들이 반드시 일어난다.
- 사람의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하나님은 단련과 훈련을 통해 큰 일을 맡기신다. 야곱을 보라. 요셉을 보라. 모세를 보라. 다윗을 보라.
- 사실 실제로 신앙은 사탄 마귀와 직접 싸운다기 보다는 나의 자아와 싸우는 시간이 더 많다.
- 유대인들이 질투하는 것, 에베소 직공들이 재물에 지배당하는 것 결국 모두 자아의 문제로 귀결된다.
- 우리가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큰 적은 결국 “나” 라는 자아인 것이다.
-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셔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셔야 했다. 복음은 나를 포기하는 것을 요구한다.
-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만 한다. 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보셨는가? 무슨 말인가? 십자가는 사형틀이다. “나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나는 더 이상 없습니다” 하고 예수님 따라가라는 말이다.
- 이 고난주간이 이 “자기 십자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한다.
복음으로 둔갑한 욕심
데메드리오의 이중성
- 이 직공들의 우두머리격인 데메드리오라는 자가 오늘 소동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이 사람의 선동맨트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교묘하기 짝이 없다.
- 사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우리 돈벌이가 떨어지게 생겼으니, 이 일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라는 것이 소동의 핵심이거늘,
- 사람들을 모아 점점 일이커지니, 일을 더 고상한 쪽으로 몰아간다.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 생업문제를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위엄도 떨어질까 한다” 라고 하면서, 종교문제로 격상시키는 것을 본다.
- 개인 삶의 문제를 신을 끌어들여 마치 신을 위한 일인것처럼 둘러대고 선전하고 정당성을 만들어간다
신자들이 경계해야하는 복음의 변질
- 여기서 우리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경계해야할 것 한가지를 배운다.
- 우리는 복음이 변질되는 것을 믿지 않는 것 만큼이나 경계해야 한다.
-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할 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꿩먹고 알먹고 하고 있는건 아닌가?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도 위하는 길이면 내가 하는 일이 다 정당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 청년들에게 늘 하던 말이 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대로만 살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양념치고 있는 것 아니냐고.
- 음식을 사실 별론데, MSG쳐서 맛을 내는 것처럼, 나의 삶의 목적은 별론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라는 양념을 치면 다 그럴싸해진다.
- 복음은 금방 말씀드렸듯이, “나 죽었소” 하고 주님 따라가는 길이다.
- 순수한 복음을 지키는 신앙이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한다.
복음의 핵심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
- 본문 초입에 바울이 에베소 사역을 정리하고 그리스 지역을 돌아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 서신서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에서 구제금을 모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보아야 하리라 라는 강한 표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 있음을 시사한다.
- 이 구절들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큰 한 덩이의 시작이다. 바울이 그의 삶의 끝인 로마로 가는 큰 한 이야기의 시작점인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
-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예수님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그 곳에서 고난 당할 것을 아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 바울도 그곳을 통해 로마로 가는 길이 고난이고 죽음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런 것이다.
우리도 그 고난의 성으로 들어가야한다
-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의 신앙이 고난의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하는 것임을.
- “자기 십자가”를 생각하며 신실하게 이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결론
- 복음에는 큰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자아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 내 욕심에 하나님 영광 양념을 치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진 순수한 복음의 신앙인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하나님, 예수님, 바울, 그리고 우리. 모두 고난을 통과해야하는 숙명이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