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서론

  1.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는 사람들의 생각을 “신”에게서 “나”로 옮기는 문화적, 철학적 운동이었다. 
  2. 그 이후로 끊임 없이, 인간은 주체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스스로 그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에 익숙해져왔다.
  3. 우리 또한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 일들을 주체적으로 알아서 계획하고, 처리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니 말이다.
  4.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설교를 이어가는데, 철학자들과 정치인들에게 “하나님이 모든 삶들의 주체이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본론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손에 달렸다

  1. 26절에서 바울은 창세기 테마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2.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이 구절은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족속들은 만들었다는 말이다. 아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이 말을 꺼내는 것은, 그리스인들에게 “너희는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창조물은 창조자의 목적에 따라, 어느 곳에 놓여지게 되고, 창조 의도에 따라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그럴 때에 가치가 있다. 그 의도와 목적을 벗어나게 되면, 아무 의미 없는 물건에 불과하게 된다. 
  4. 집에 밀가루, 계란, 우유, 설탕, 기름 같은 기본적인 재료들이 다들 있으실 것이다. 그것들이 그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5. 미국에서 케이크가 너무 달아서 한국식 케이크맛이 그리워서 스스로 만들어 먹었다. 밀가루, 계란, 우유, 설탕, 기름이 기본적인 재료들만 있으면,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 
  6. 밀가루 이만큼, 계란 이만큼 우유 이만큼 정해서 너 먼저 그 다음 너 하면서 섞어가야 케이크가 만들어진다. 
  7. 우리의 존재라는 것, “나”라는 존재는 2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만드시고” “정하시고” “한정하시고” 하는 목적과 의도가 없으면, 밀가루, 설탕에 불과한 것이다. 케이크가 될 수 없다.
  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는 여기 있으라 하시고, 너는 여기 있으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살아가도록 정하시고 한정하셨다. 
  9.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의도와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계신 줄로 믿는다. 
  10. 그렇다면, 밀가루 설탕 계란 우유 기름이 “케이크”가 되는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 모두 한사람 한사람을 만드시고, 정하시고, 한정하셔서 이루고자하시는 의도와 목적이 무엇일까?
  11. 27절에 바울은 그 의도와 목적을 말해준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께로 가는 여정이다

  1. 바울은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향한 의도와 창조 목적을 갖으신 것은, “혹, 더듬어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다” 라고 말한다.
  2. 그러면서,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라고 덧붙힌다. 
  3. 이 두 문장은 당시 두 유력한 철학 학파인 스토아와 에피쿠로스의 개념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4. 스토아학파는 자연법칙들을 통해 지성을 통해 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고, 
  5. 에피쿠로스학파는 하나님은 자연세계의 밖에 존재하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는, 무관심한, 멀리 계신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6. 바울은 단순히 자연법칙과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분명히, 우리 모두가 한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났음과 그의 의도 목적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통해 더듬어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7.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계심을 말하고 있다. 
  8. 하나님이 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성령을 통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전 삼으사 찾아오셨어야 했는가? “우리에게 멀리 계시지 않기 위해서다” 
  9. 다시 케이크 이야기를 해보자. 케이크를 왜 만드는가? 먹으려고 만든다. 더 원론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10. 케이크를 왜 먹는가? 탄수화물 중독이라서 먹는 것인가? 당 떨어져서 먹는가? 영양을 생각해서 먹는가? 달달한 것 먹고 기분 좋을려고 먹는다. 
  11. 케이크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먹어져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12.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다. 
  13.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스바냐서의 말씀처럼,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찬양드릴 때, 기도 드릴 때, 말씀 듣고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14.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해 볼 말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 아니하다는 말인데, 우리가 평소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사실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있다.
  15. 내가 너가 엮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 그자체는 이미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는 현장이다. 
  16. 나의 삶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우리의 삶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시다

  1. 29절에서 바울은 우상들에 대해서 말한다. 하나님의 소생이 된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하는데, 우상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 우리가 하나님, 즉 창조자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고쳐야할 잘못된 생각이 하나 있다.
  3.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손으로 금과, 은과 돌로 우상들을 만들었다. 
  4. 창조된 인간이 창조자인 신을 창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걸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케이크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겠다.
  6. 밀가루 설탕 계란 우유 기름이 서로에게 작용을 하면서, 케이크가 된다. 물론 설탕을 넣어서 계란을 돌려줘야 더 잘부풀기는 한다. 어느 정도 서로 작용하는 역할이 있기는 하다. 
  7.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제빵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설탕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그 것을 결국 일어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8. 우리가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작고 큰 창조와 실행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그 창조는 설탕이 계란을 조금 잘 부풀게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의 삶을 통해 의도하신 의도와 목적을 이루어가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9. 우리가 이걸 잊어버리면, 그리스인들처럼, 금과 은과 돌과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의미 없는 우상들을 만드는데 그치고만다. 
  10. 나의 능력으로 열심히 살고 바쁘게 살아서 남는 것만을 생각하며 산다면, 우리는 창조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창조자의 자리에 설려고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11. 28절의 고백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힘 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는 것임을 우리의 삶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

결론

  1. 서론에서 우리가 나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실행하고, 그리고 결과를 책임지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말씀드렸다.
  2. 어찌보면, 우리는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벌인 일이라고,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 성경전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의 주체는 “나” 가 아니라,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4. 케이크는 먹는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존재의 의도이고 목적이다.
  5. 나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다. 
  6. 이 존재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살아간다면, 나는 필요이상으로 “창조자”의 위치에 서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책임감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다.
  7.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의 삶의 주인은 나다. 
  8. 삶을 주체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하나님의 소생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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