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
2019년 4월 22일

자기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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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9:21-29

예배일시

2019년 4월 17일

서론

  1. 바울과 그의 팀이 에베소에서 긴 시간 머물며 성공적으로 사역을 해나갔다.
  2. 사람들이 자복하며 회개하고, 자신의 이익을 찾지 않고 마법책을 태우며 성령의 열매들을 맺는 모습을 본다.
  3.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이제 에베소를 떠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떠나가려는 상황에서 큰 대적이 일어난다.
  4. 오늘은 이 본문을 통해 복음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한다.

본론

복음의 큰적

아데미 신전

  1. 아데미 신전을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2.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훨씬 크고 그 크기가 가로 120미터에 세로 70미터 높이 20미터에 이르는 건물이다. 
  3.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을 정도로 이 아데미 신전의 위용은 대단했다.
  4. 아데미여신은 풍요의 신이고, 다산의 상징이고, 신들 중에서도 신이여서, 많은 이들이 찾고, 섬기는 신이었다

복음의 큰 적

  1. 이러한 신이었기 때문에, 그에 연관된 사업들도 자연스럽게 번창하게 되었는데, 신전 자체가 은행과 금융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많은 돈 들이 그곳에 예치되고, 빌려주는 등의 사업이 행해졌다.
  2. 비단 에베소만의 행태는 아니었다. 잘 알듯이 예루살렘 성전도 그러한 일들이 행해졌던 것을 잘 알고 있다.
  3. 그리고 신전 주변 땅과 건물들이 예속되면서, 신전 자체가 큰 비지니스의 중심역할을 했다.
  4. 그것 뿐만 아니다, 어떤 종교던지, 신의 모형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그리고 그것을 모시는 일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유력한 신의 모형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번창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5. 바울이 에베소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전체 도시에 신은 한 분 밖에 없으니 우상을 멀리하라고 전도를 하니, 에베소에서 우상 모형을 만들어 팔아 풍족하게 살던 직공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6. 바울이 가는 곳마다 부딪힌 반대세력의 저의는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질투심이고 또 하나는 재물이다.
  7.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인기를 빼앗기는 것을 질투해 극력히 반대했고, 마술을 행하는 이들이나, 오늘 본문에서 처럼 직공들은 재물 문제로 반대를 했다. 

두 주인은 섬길 수 없다

  1. 재물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삶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2. 예수님도 재물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고 강력한 것인지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두 주인” 이라고 표현하시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3. 재물은 섬기는 것이 아닌, 다스리는 것이다. 돈을 쓰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데, 돈이 손에 들어오면, 무언가를 살 것, 먹을 것을 생각해 내서 돈을 써버리고 만다. 이건 이미 돈의 노예다.
  4. 이것은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소비형태가 아닌, 돈이 나의 소비형태, 삶의 형태를 결정함으로써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심자들의 마음 속 영적 전쟁

  1.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이러한 반대세력이 일어나는 것처럼, 복음이 있는 곳에는, 복음에 반해서 우리의 자아, 우리의 육이 원하는 것들이 반드시 일어난다.
  2. 사람의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하나님은 단련과 훈련을 통해 큰 일을 맡기신다. 야곱을 보라. 요셉을 보라. 모세를 보라. 다윗을 보라. 
  3. 사실 실제로 신앙은 사탄 마귀와 직접 싸운다기 보다는 나의 자아와 싸우는 시간이 더 많다. 
  4. 유대인들이 질투하는 것, 에베소 직공들이 재물에 지배당하는 것 결국 모두 자아의 문제로 귀결된다. 
  5. 우리가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큰 적은 결국 “나” 라는 자아인 것이다. 
  6.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셔야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셔야 했다. 복음은 나를 포기하는 것을 요구한다. 
  7.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만 한다. 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보셨는가? 무슨 말인가? 십자가는 사형틀이다. “나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나는 더 이상 없습니다” 하고 예수님 따라가라는 말이다. 
  8. 이 고난주간이 이 “자기 십자가”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한다. 

복음으로 둔갑한 욕심

데메드리오의 이중성

  1. 이 직공들의 우두머리격인 데메드리오라는 자가 오늘 소동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 이 사람의 선동맨트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교묘하기 짝이 없다. 
  2. 사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우리 돈벌이가 떨어지게 생겼으니, 이 일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라는 것이 소동의 핵심이거늘,
  3. 사람들을 모아 점점 일이커지니, 일을 더 고상한 쪽으로 몰아간다.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1. 생업문제를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위엄도 떨어질까 한다” 라고 하면서, 종교문제로 격상시키는 것을 본다. 
  2. 개인 삶의 문제를 신을 끌어들여 마치 신을 위한 일인것처럼 둘러대고 선전하고 정당성을 만들어간다

신자들이 경계해야하는 복음의 변질

  1. 여기서 우리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경계해야할 것 한가지를 배운다.
  2. 우리는 복음이 변질되는 것을 믿지 않는 것 만큼이나 경계해야 한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고 할 때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꿩먹고 알먹고 하고 있는건 아닌가?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도 위하는 길이면 내가 하는 일이 다 정당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4. 청년들에게 늘 하던 말이 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대로만 살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양념치고 있는 것 아니냐고. 
  5. 음식을 사실 별론데, MSG쳐서 맛을 내는 것처럼, 나의 삶의 목적은 별론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라는 양념을 치면 다 그럴싸해진다.
  6. 복음은 금방 말씀드렸듯이, “나 죽었소” 하고 주님 따라가는 길이다. 
  7. 순수한 복음을 지키는 신앙이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한다.

복음의 핵심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

  1. 본문 초입에 바울이 에베소 사역을 정리하고 그리스 지역을 돌아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2. 서신서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에서 구제금을 모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3.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4. 보아야 하리라 라는 강한 표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 있음을 시사한다.
  5. 이 구절들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큰 한 덩이의 시작이다. 바울이 그의 삶의 끝인 로마로 가는 큰 한 이야기의 시작점인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

  1.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예수님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그 곳에서 고난 당할 것을 아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2. 바울도 그곳을 통해 로마로 가는 길이 고난이고 죽음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런 것이다.

우리도 그 고난의 성으로 들어가야한다

  1.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의 신앙이 고난의 성,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하는 것임을.
  2. “자기 십자가”를 생각하며 신실하게 이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한다.

결론

  1. 복음에는 큰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자아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한다.
  2. 내 욕심에 하나님 영광 양념을 치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진 순수한 복음의 신앙인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3. 하나님, 예수님, 바울, 그리고 우리. 모두 고난을 통과해야하는 숙명이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