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때 있었던 일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에 갈 일이 있어 강변에 동서울 터미널을 갔다. 표를 사고 시간을 기다리다가 기사님께 표를 드리고 버스에 올라탔다.
-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차에서 할 만한 일이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는 일 정도 뿐이어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 한참을 듣다가 잠을 좀 자다가 깨어났다. 중부 고속도로는 외가에 갈 때 늘 다니던 길이기 때문에, 길이 익숙한데, 깨어나보니, 느낌이 싸~~~ 했다. 늘 보던 그 길이 아니다.
- 지금 같으면, 핸드폰으로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네비라도 켜볼텐데, 한참을 아니겠지 아닐거야 하다가, 기사님께 가서 물었다. 이거…거기 가는 버스 아닌가요…??
- 순간 기사님의 그 “이놈은 뭐야” 라는 표정과 반응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저의 인생에 있어 가장 예상치 못했던 여행이 시작됐다.
- 지금 같은 시대에는 그렇게 기사님들이 못할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아직 시대가 아날로그였던 것 같다. 기사님이 다음 톨게이트 합류하는 지점에 가서, 저를 고속도로 갓길에 내려줬다. 그리고는, 걸어서 톨게이트로 올라가서 거기서 아무 차나 얻어타고, 그 동네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새로 타고 최종 목적지로 가라는 것이다.
- 그렇게 제안을 실행하는 기사님이나, 또 고속도로에 진짜 내려서 걸어서 톨게이트로 올라간 저나, 정상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 역사는 정말 일어났다. 이거 실화입니다.
- 톨게이트를 향해 밑에서 위로 걸어 올라가니, 이미 저쪽에서 톨게이트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멀리감치서부터 나왔다. 자신도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믿기지 않으신 듯 했다. 멀쩡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멀쩡히 차려입고 고속도로에서 걸어 올라오는데, “너가 거기서 왜 나와” 이 느낌이다.
- 여차저차 설명했더니, 톨게이트 옆에 서 있으란다. 그러다가 대형트럭을 운전하시는 분이 지나가실 때, 사정을 이야기 하고 나를 태워달라고 부탁하셔서 트럭을 얻어탔다.
- 이것이 바로 영화에서나 보던 히치 하이킹! 남자도 히이 하이킹 할 수 있다. 그렇게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새로 타고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 심지어 내린 톨게이트가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그 트럭기사분이라 어떤 대화를 했었는지도 기억안난다. 전혀 안난다. 단지 제가 잘못탔고, 잘못 내렸지만, 잘 도착했다는 것만 머리에 남아 있다.
- 오늘은 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경험담을 말씀드렸다. 길이라는 것은 정신 놓으면, 잃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심지어 요즘 세상에 네비가 있어 켜놓고 가다가도 정신 놓고 운전하다보면, 나가야 되는데 안나가는 경우가 있다.
- 오늘 바울이 길을 걷는다. 그리고 길을 방향 잡고 끝까지 걷는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길을 걸을 것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