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상거래가 태동하기도 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지고 싶었던 씨디 플레이어를 사려고 강변 T마트에 갔다.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음향기기 층에 내리자마자 판매하는 이들의 따가운 눈빛과 함께 구애가 시작된다.
- 웬지 처음 목좋은 자리는 자리값이 비싸서 더 비쌀 것 같아 좀 들어가본다. 적당한 곳에서 구매를 시작 해본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짚으면, 그쪽에서는 가격을 말해주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얼마까지 알아보셨어요?" 나의 정보력 테스트 첫 번째 관문이다. 거기서 대충 못맞추면 나는 이제 호갱이다. 호구고객.
- 대충 맞추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것 보다 이게 음질이 더 좋은데 비교 한 번 해보실래요? 마진이 많이 남는 물건에 좋은 이어폰을 연결해놓고 내가 찾는 것에는 싸구려 이어폰을 연결해서 비교시킨다. 당연히 귀가 있다면 혹해서 넘어갈만하다. 이것 테스트도 통과 한다면 이제 판매자는 채념하고 악세사리 팔이로 넘어간다. 이 충전지를 써야 씨디플레이어가 고장이 잘 안 난다로 시작해서, 포함된 이어폰이 안 좋다면서 고가 이어폰 장사로 마무리된다.
- 제가 이 프로장사꾼들의 작전을 왜 이렇게 잘 알고 있을 것 같은가? 그 이유는 제가 연구를 많이해서가 아니라, 제가 싸그리 완벽하게 그 단계를 다 당했기 때문이다. 고백한다. 저는 호갱이었다. 고등학생은 프로 장사꾼을 이길 수 없었다.
- 당했다는 것,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 시간 이후로 인터넷이 급격히 보급되면서 그들의 수법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다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일 이후로 값이 좀 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그냥 사는 법이 없다. 그 업계 최신 동향을 싸그리 다 공부하고 가격대를 확실히 안 뒤 산다. 충격이 컸다.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제가 알았더라면, 시급 1800원 시절에 알바해서, 아니 노동력 착취당하는 댓가로 모은 돈을 그런 어줍잖은 사기를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