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16-19
-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본 적도 없는 사라의 이름을 언급하며 묻는 질문에 나그네 중에 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하나님이 직접 움직이시는 경우는 성경에서 매우 드문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창세기에서 두 번 볼 수 있는데, 바벨탑과 오늘 보듯이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 때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그 땅의 죄악이 편만해서, 땅이 울부짖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정의라는 것 모든 생명을 만드신 하나님께 있어서, 마치 자신이 공격받으시는 것처럼 반응하실 만큼, 직접 움직이실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모든 생명과 약자들의 삶이 위협받지 않도록 정의로 보호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방법이다.
진짜 복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떠나가시면서 나머지 두명과 의논을 하신다. “내가 소돔에서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길 수는 없겠다.” 여기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 이유에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에게 숨기시지 않으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되도록 하는 방법, 복을 받게 하는 방법이,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지금 복을 누리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여호와의 도를 자식과 권속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복의 방도라고 생각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도,’ 즉, 하나님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모든 것들이 존중 받는 정의가 서는 것이고, 그런 삶의 방식이 전해지도록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한 주는 이런 삶을 사셔서, 아브라함이 누렸던 이 복을 모두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