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잠언 8:1-13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서론
관광가이드와 여행사는 최대한 많은 여행객을 모아서 관광지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접해보지 않은 곳에 온 사람들에게 어떤 곳이고, 무엇을 조심해야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여행 중에도 새로운 곳에 갈때마다 역사, 정치, 문화등의 배경들을 설명해 주고 이해하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해주어야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고, 삶에 이득이 되고, 무언가 남는 여행이 되게 해줄 수 있다. 오늘은 지혜를 이 관광 가이드에 빗대어 말씀을 드려볼까 한다.
본론
네거리 높은 곳에 서서
8장은 지혜를 여인으로 의인화해서 전 장에서 나오는 젊은이를 유혹하는 여인과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지혜가 소리를 높여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데,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서 외치고 있다.
선거철에 우리가 흔히 보는 장면 아닌가? 사거리마다 자동차 위에 올라가서 스피커로 큰소리로 외치는 후보들의 모습을 우리가 본문에서 본다. 듣기 싫어도 내 귀에 들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다. 큰 소리가 날 것이 없는 고대시대에는 더욱이 집중되었을 것이다. 지혜가 들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외치고 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성문 곁, 문어귀와 출입문에서 부른다고 했다. 원어의 단어를 통해 한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성문을 통해 들어가려는 자들에게 외치다는 점이다. 단어의 흐름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곁, 어귀, 문으로 시선이 흐른다. 지혜는 지금 마을로 들어오는 이들에게 가이드의 역할을 하듯이 이 곳에 들어가기 전에 들어야할 말이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마을에서 겪게 될 일에 대해 말하니
고대시대에는 성문 중심으로 상업과 정치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성문을 지나면 바로 장사하는 사람들과 여러가지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웠고, 룻기에서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앉아 있다가 장로들을 청해 친척과 룻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읽어보셨을 것이다.
지혜가 성문 앞에서 들어가는 이들에게 가이드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새로운 일들을 하게될 것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혹은, 장사나 정치에 개입하게될터인데, 지금 너무 중요하니까 내 얘기를 좀 들으라고 소리를 높이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청자들에게 내 말은 진리이고, 의롭고 완벽해서, 상거래가 일어나는 곳에 흔히 보는 금, 은, 보화나, 재물 보다 더 중한 것이니 잘 들으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필요한 곳은, 우리가 말씀을 읽는 집, 혹은 예배 드리고 설교를 듣고 하는 교회보다는, 오히려 장사를 하고, 정치를 논하고, 사람을 만나는 밖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 특별하게 예배와 성전에 관련된 몇 권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람들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등, 직접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어떻게 사는가? 나의 개인적 경험이나, 감각이나, 판단에 의지해서 경제적,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말씀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때가 많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에 가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왼손 내밀면 안되는 나라에서 내밀었다가 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고, 팁을 줘야 되는게 예의인데, 안줬다고 욕을 먹으면 어떻게 할려고 자기의 판단을 의지하겠는가?
우리의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은가? 두 번 사는 사람이 어디있나? 처음 사는 인생인데, 왜 우리는 그렇게 가이드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살려고하는 것일까? 지혜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외치고 있다. 경제, 정치, 문화,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가장 필요하다고.
우리의 매일의 삶에 말씀의 지혜가 가장 필요한 줄로 믿는다.
교만떨지 말고 새겨들어라
기사를 쓰던지, 논문을 쓰던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자료 출처의 권위이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만 하더라도,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의 위용은 대단했다. 세상의 수 많은 토픽들에 대한 권위자들의 글들로 채워진 이 백과사전은 세계의 웬만한 도서관에는 다 소장할 정도로 권위가 대단했다.
하지만 2000년 대에 들어오면서 모든 미디어들이 인터넷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빠르게 정보를 찾기위해서 “위키피디아” 라는 싸이트를 이용하는데, 이 싸이트는 누구나 편집할 수 있고, 수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정과 수정을 거듭해 점점 정확도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논문이나 기사에 참고문헌으로 사용할 수 없다.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다.
가볍게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제일 많이 사용하지만, 권위는 떨어진다는 말이다. 신학공부를 할 때도 논문을 쓸 때는 인터넷의 자료는 참고자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기사나 뉴스를 보면 항상 권위있는 전문가를 앞세워서 하고자하는 말을 전달한다. 왜냐하면, 듣는 이들은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먼저 판단한 뒤에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을지 말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사람의 어떠함을 먼저 인정해야만 그 사람의 말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연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이 힘이 있는 것이다. “아~ 그런 일도 겪은 사람의 말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알고, 깨달아, 인정하는 단계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다. 절대로. 13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교만과 거만을 미워한다.” 그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인생 가이드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 우리 인생들의 출처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믿겠는가?
하나님의 경외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 하나님이 진짜임을 믿는 마음으로 인생 가이드를 따라가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지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는 관광 가이드와 같다. 하나남께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지혜를 듣고 깨닫기를 바라신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어서, 어떤 곳이고, 무엇을 조심해야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가는 곳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때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시 이야기 하자면, 지혜의 근원되신 주님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 없이는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꽂히고 새겨지지 않는다. 지혜는 그래서 교만과 거만을 미워한다. 말씀이 새겨질 수가 없는 마음이다. 존경과 배움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곳, 아무도 의지할 사람 없는 곳에 여행을 갔다고 생각하고, 가이드 밖에 의지할 것 없다는 심정으로 우리 인생을 주님만 의지하고 산다면, 우리는 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만과 거만한 마음을 버리고,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 말씀만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