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1-7
-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서론
성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것들이 없어질 것이고, 사라질 것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다. 아무리 귀한 보화도, 물건도, 몇천년은 견딜지 몰라도, 언젠가는 다 사라져 없어지고 만다. 옛부터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없어지고 무뎌졌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혹은 그렇지 못하게 하려고, 계약이라는 것을 하고, 언약이라는 것을 한다. 결혼이 연애와 다른 이유도 시작과 끝을 간단히 일방적으로 끝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본론
언약은 영원한 것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에게 후손을 약속하시고, 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다. 그렇게 하나님만 믿으면서 살아오다가 사래는 나이가 차면서, 그 시대에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인 누구나 하던 것 처럼, 타인을 통해 자녀를 얻고자 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러고도 13년이 흘렀다. 애굽에서 돌아온 후로 거의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른 것이다. 이 정도 상황이 되면, 희망을 가지고 있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그런데 사래와 아브람이 하나 잊어버린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99세가 되었는데 다시 찾아오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언약을 세워서…영원한 언약을 삼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브람 뿐만 아니라, 대대 후손에게도 동일한 이 영원한 언약을 주셨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아 주시고 이 영원한 언약 안으로 부르셨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이 있다. 우리는 복을 누릴 것이고, 복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 때에 승리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90대가 된 사래처럼, 우리는 다들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은 기다리지 못하겠을 때가 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은 시간과는 관계가 없는 영원한 언약이다. 영원하다는 것은, 시간과는 관계 없다는 말이다.
점진적인 언약
하나님의 언약의 또 다른 특징이 하나가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빠꾸가 없다. 아담에게 번성하라 하셨는데, 실패했다. 노아에게 번성하라고 하셨는데, 실패했다. 우리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는 것 하나가 있는데, 특히 아브람에게 오늘 17장에서 하신 언약은 특별한 것이 있다. 아담과 노아에게는 번성하라고 축복의 명령을 하셨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는 하시는 말씀이 “내가, 하나님이 직접, 너로 심히 번성하게 만들겠다” 이 구절을 히브리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 그렇게 만들겠다는 말씀이다. 이전에 “번성해라” 라고 축복하시면서 명하신 것으로는 안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시겠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왜그러셔야 했을까?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안 지키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후퇴가 없고, 점점 가까워지고, 점점 확실해지고, 점점 이루어진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점점 언약은 멀어져가는 것 같았고, 희미해지고, 몸은 쇠약해져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우리 눈으로 보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 마음으로 느끼는 것과는 전혀 상관 없이 언약은 점점 가까워지고 구체화 되고 있다. 우리는 승리자이고, 복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다. 우리와 영원토록 끝날까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아닌 것 같이 느껴지시는가? 그 약속이 희미하게 보이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빠꾸가 없다. 계속해서 날마다 가까워지고 있고, 날마다 커져가고 있다.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못하면 하나님이 대신 해주시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일어난다. 믿음으로 취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언약보다 중요한 것
한가지 더 본문에서 나누고 싶은 은혜가 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평생 동안 사용한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주신다. 아브람이란 뜻은 ‘존경받는 아버지’ 정도의 뜻을 갖는데, 하나님은 그 이름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 으로 바꾸신다. 하나님의 이루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시기도 하지만, 이름이라는 그 자체 대해서 생각해 봤을 때에, 이름은 그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의 기대를 내포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어려서부터 저를 보셨기 때문에 못 느끼시겠지만, 제 이름은 생각보다 충격적인 이름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동공이 다 커질만큼 특이한 이름이다. 그렇지만 저의 이름에는 아버지의 기대와 소망이 담겨있다. 제가 물론 그 소망에 부합되는 사람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말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신경 쓰고 계시다는 이 점만으로도 우리는 이 관계가 훨씬 이전과는 다르게 깊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담과 노아에게 복을 ‘명’하셨다는 것과는 다르게, 아브람은 마치 하나님께서 자식을 낳은 것처럼, 이름에 신경을 쓰시고, 가족의 관계처럼 대해 주시기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아들 삼으시고 이름을 지어주시며, 이제 자식들 대대로 많이 나으면서 살도록 내가 도와 줄게. 하나님과 이런 관계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언약도 좋고, 복도 좋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가족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을 수가 없고, 우리를 향한 약속 지키시지 않을 수가 없으시다. 믿음으로 아브람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이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가 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유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다는 것을 자꾸 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영원한데, 우리는 유한한 것처럼, 조급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우리가 복된 삶을 살고, 승리하는 삶을 영유하는 것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앞으로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희미하고, 후퇴하는 것 같고,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도, 한가지만 기억하자.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의 상황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나서서 이루어 주신다. 우리의 믿음을 굳게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복을 누리시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