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바울과 그의 전도팀은 드로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이제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동쪽으로 진행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 에베소서 긴 시간을 보내고, 고린도 지역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면서,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한 바울은 아무래도 여러가지 생각과 고민과 감정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다.
본론
바울은 걸어가고자 한다
- 드로아에서 제자들과 작별하고 항구로 이동한 전도팀에게 바울은 나는 걸어서 앗소로 이동할테니 너희들은 배를타고 앗소로 오라고 명한다.
- 드로아에서 앗소가 부지런히 걸어서 하룻길이 될 수는 있고, 조류에 따라서 배보다 걷는게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머지 8명이 배를 타고 가는데 굳이 혼자 걸어가려는 바울의 저의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예측이 가능하다
- 많은 돈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바울이 예측하지 못 할 방법을 택했을 수 있다.
- 가는 길에 만나고 가야할 제자들이 있어서, 최대한 기회를 이용해, 그야 말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사역을 하기 위해서 걷기를 택했을 수 있다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수 있다. 긴 시간 쉼 없이 달려온 바울이 이 3차 전도여행을 정리하는 이 시간에 돌아보고 기도하며,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수 있다
- 시기상 그리고 나머지는 배를 타고 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예측에 무게가 실린다. 바울은 굳이 시간을 내어 길을 홀로 걸어가기를 선택했다
- 이러한 시간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 같다. 바쁘게 목표지향적으로 살아가며 달려가다 보면, 오히려 신앙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 신앙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는데에 있다. 그렇기에 예배하며 기도하며 말씀을 읽는다.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소통하기 위해
- 예수님께서 시시때때로 한적한 곳에 물러나 기도를 하심은 우리가 그것을 삶 속에서 행해야 함을 보여주신 것이다.
- 그런데 사실 바쁜 일상 속에 물러가 기도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아니 어쪄면, 힘들다기보다는 너무 인위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연스럽게 삶 속에 일어날리 없는 일이다.
- 답은 안다. 하나님과 교재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그 친밀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가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쉽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다.
- 예수님과 바울이 보여주는 본은 이것이다. 인생의 중요하고, 바쁘게 움직여야하고, 고민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는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낭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물러나 하나님과 독대하실 수 있는 성도님들 다되시기를 축복한다.
바울은 아시아를 지나치고자 한다
- 홀로 하루를 꼬박 걸으면 기도하고 고민하며 앗소로 내려온 바울은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동료들에게 합류한다. 같이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이른다.
- 16절에서,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다.
- 그 이유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밀레도에서 잠시 머물면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온다는 점이다.
- 에베소에서 밀레도는 하루에 오기는 빠듯한 거리다. 메신저가 갔다가 갔이 돌아오는데만도 3-4일 걸렸을 것인데, 지체하지 않기 위해 밀레도까지 내려온 바울이 몇일을 밀레도에서 허비한다.
- 사실 에베소 장로들을 부르려면 이전 경유지, 사모섬에서 보는 것이 훨씬 가깝다.
- 이 구절들 뒤에 흐르는 바울의 감정을 읽으려고 노력해 보면,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알게된다.
- 자신을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마음과 더불어, 그 끝에 기다리는 고난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뒤로하고 가야하는 아시아의 교회들, 특히 3년이나 사역한 에베소 교회.
- 바울의 마음이 참으로 쉽지 않음을 알게된다.
- 에베소에서 떠나기전 있었던 은장색들과의 소요로 비추어 보건데, 바울이 그 곳에 다시 들어가면, 금방 갔다 금방 돌아오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보고 싶지만, 마음을 접고 아시아를 지나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정박을 하게되자, 접었던 그 생각을 다시 꺼내어 장로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기로 한 것이다.
- 바울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빌립보서에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썻다.
- 그가 이제 가면 다시 보지 못할 제자들을 끝내 그냥 떠나지 못하고, 불러내어 보는 것은, 제자들을 두고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제자들은 다 흩어질 것을 아시는 주님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이러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보호하시기 원하시고, 힘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을 보기 원했던 것 처럼, 무엇보다 직접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만나겠는가? 예배와 기도와 말씀으로 그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한다.
바울이 그들에게 한 일들을 되새긴다
- 청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이 바울에게 왔다. 그들이 오자, 바울이 스피치를 시작하는데, 사도행전에서 유일하게 기록된 바울이 이방인이나, 유대인들이 아닌, 기독교인들, 교회에 하는 스피치이다.
- 운을 이렇게 땐다.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 사도행전으로 보건데, 바울이 강하고 우직한 사람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사실 성경을 통해 보는 바울은 눈물 자주 흘리고, 말재주도 별로다.
- 에베소 사람들 가운데에서 어떻게 행했고, 고난을 어떻게 견뎠으며, 섬긴 것, 가정 교회마다 다니며 말씀을 가르친 것들을 상기시킨다.
- 가만히 읽어보면, 바울은 참으로 예수님 같이 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인간들 가운데서 행하셨고, 고난을 견디셨고, 제자들을 섬기셨으며, 곳곳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셨다.
- 기독교 예배의 큰 뼈대 하나는 기념이라는 가치에 있다.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일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것이 예배의 큰 뼈대다.
- 그래서 예배는 감사와 기쁨이다.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기념 할 때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예배가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축원한다.
결론
- 신앙생활을 긴 여정이다. 바짝 해치우고 결과가 나와 메달을 받는 경기가 아니다.
- 수영을 하러가면 가끔 장거리 수영, 2.5km 같은 것을 강사가 시킬 때가 있다. 50바퀴를 30분 쉬지 않고 꼬박 돌아야 마칠 수 있는 거리다.
- 처음에 힘 있다고 치고 나가면 중간에 힘이 빠져 쉬어야 하고, 또 너무 느리게 가면 시간 내에 완주할 수 없다. 이런 장거리에는 그래서 중요한게 일정한 리듬이다.
- 신앙생활에도 필요한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리듬은 다름 아닌,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을 항상 만나는 것이다.
- 기도로 주님과 독대하고, 예배 가운데 감사와 기쁨을 회복하고, 주님을 만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