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16-21
-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서론
- 고대 서양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 받고 인정받는 사람 중의 하나는 누가 뭐래도 소크라테스이다.
-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글쓰기가 문학의 한 장르가 될 정도로 소크라테스는 서양 지성세계에서 아주 높이 오랫동안 인정받았다.
-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00년대에 살았는데, 그의 말년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하고 민주주의가 과연 올바른 정치 모델인가에 대한 의심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 소크레테스는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결정적으로 당대의 지성인들이 말로 소크라테스를 이겨낼 재간이 없자, 당시의 엘리트들은 소크라테스를 오늘 바울이 설교를 하는 아레오바고로 대려와 말을 듣고 재판하여,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고, 젊은 이들을 현혹한다” 라는 죄목으로 사형 당한다.
- 오늘 본문의 바울은 마치 소크라테스를 생각나게 한다. 당시에 1세기 기독교인들이 이 본문을 읽었다면, 자연스럽게 소크라테스가 생각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이 장면은 소크라테스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 하나님께서 그리고 저자 누가가 이 아덴에서의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심이 있으실 것인데, 그것들에 대해 몇가지 나눠보고자 한다.
본론
아덴이라는 도시
- 아테네는 그리스가 지중해 패권을 지배할 때 시절에는 그 영광을 한껏 누렸던 도시다.
- 그리스 내의 전쟁들과 결정적으로 로마가 새로운 힘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그 영광을 잃고, 작은 소도시에 불과하게 되었지만, 지성의 도시로서의 기능은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다.
- 가장 높은 곳에는 파르테논이 위치해 있고,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석상들이 즐비하고, 건물마다 신들의 모습과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 바울은 도시를 들어서자 마자 자신을 반기는 우상을 만났을 것이고, 16절에서,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며 아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회당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 우상이 너무나도 많고, 온 도시를 덮고 있는 그 어두움을 보면서, 바울은 마음에 격분해서 더욱 더 전도를 하기 위해 돌아다닌다.
- 아덴에는 “아고라” 라고 불리는 시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매일 경제활동을 하고 말을 나누는 일상의 장소였다. 바울은 이 아고라에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부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 서양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에, 가장 흔하게 준비하는 것은 다이아반지다. 우리나라도 현대에 들어서는 예물로 많이 사용한다
- 이 다이아몬드의 가장 큰 문제는 가공을 하고난 후 떨어지는 가치다.
- 사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생각하면 금반지를 사는 것이 맞지만, 다이아반지가 갖는 희소성과 비쥬얼이 다이아몬드를 최고의 반지 재료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 다이아몬드를 금 위에 선택하는 기준은, 분명히 진리나, 가치의 불변성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징성에 가깝다.
- 아테네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지켜오고 있는 신들에 대한 믿음은 이런 상징성에 가깝다.
- 소크라테스를 심판할 때도 신들을 언급했지만, 사실 체제에 반하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쳐낸 것이다.
- 그렇게 아테네를 묶고 있는 어둠의 영들과 의미 없는 우상 숭배를 향해 바울은 격분하여 “진짜”를 알려주고 싶어 동분서주 한다.
- 여기서 우리가 배울 복음 전도자의 마음을 본다.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은 첫째, “진짜에 대한 열정”일 것이고, 둘째로는, “가짜에 메여있는 이들”을 건지고자 하는 안타까움이다.
-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철학자들
- 몇 일이나 그랬는지는 모르나, 바울이 아고라에서 매일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들을 전하고 사람들의 안목을 끌게되니, 서민들을 넘어 엘리트 지성인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 18절에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했다고 했다.
- 에피쿠로스 학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와는 상당히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 신은 존재하지만, 자연세계와 독립적으로 떨어져 참견하지 않으며, 우리의 세계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 그리고 죽음 뒤에는 육과 혼은 소멸되며, 사후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심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다.
- 에피쿠로스 학파가 일부 엘리트 계층에게 인기가 있엇따면, 스토아 학파는 대중들에게 그리고 훨씬 많은 계층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 가장 인기 있는 학파였다고 볼 수 있다.
- 스토아의 핵심 개념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로고스”다.
- 스토아 학파는 온 창조세계를 관장하는 절대적인 논리를 “로고스” 라고 했고, 신이 이 로고스를 통해 세상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요한이 당시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로고스”를 사용해 말씀을 로고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스토아 학파는 운명론을 믿었고, 모든 물질의 시작은 “불”이라고 믿었다.
- 그리고 신과의 친구됨, 우정들을 말하기도 했다.
- 두 파를 대충 들어보셔도, 소토아학파가 훨씬 우리가 아는 세상과 신에 대한 개념과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어떤 이는 바울은 “말쟁이” 여기 저기서 주어들은 것들은 말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믿기는 아덴의 사람들은 바울이 “예수”와 “부활” 이라는 두 신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 그럴만도 한 것은, 부활의 개념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대인들도 부활을 말하고 믿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은 부활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 그리고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아” 인데, “아나스타샤”는 그 당시 흔히 사용하는 여자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신들이 보통 신과 여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 우리는 기독교를 오랫동안 배워왔고, 어려서부터 접해온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신, 세상, 부활 같은 개념에 대해 이해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 그런데,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무신론자들도 있고, 타 종교자들도 있다.
- 그들에게 우리는 “말쟁이”가 될 수도 있고, 그 들에게 전혀 새로운 개념을 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 학교에서 미국인 친구와 귀신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이 친구는 근래에 처음 태어나서 악한 영에 대한 경험을 하고 관심이 많아지고 있던 터였다. 집에 세를 들어 살 고 있었는데, 집 주인이, 주술 같은 것을 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놀래서 얼른 집을 옮겼는데, 그 이후로 그런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 내가 순복음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질문을 했다.
- 그래서 한국의 귀신의 역사나, 쫓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을 때에, 뼛속부터 기독교인이었는데도, 너무 새로워 했다. 그리고 아버지 목사님의 축사사역에도 이야기를 했더니, 어떻게 하는 건지 배웠는지부터 물어봐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가 전해야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개념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것은 “새로운 것” 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새로운 것에 전문가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할 때에,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 바울이 전혀 어색한 환경에서 일할 때에, 보이지 않게 일하고 계신 분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의지하고 새로운 것들을 전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새 소크라테스
- 바울이 결국 철학자들의 눈길을 끌어, 아레오바고로 붙들려 가게 된다.
- 아레오바고는 그냥 말 듣겠다고 가는 장소는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바울이 본문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심판을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 것은 맞다.
- 아덴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에 대한 도전을 경히 여기지 않았다.
- 서론에 말씀드린것 처럼, 바울은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독자들에게 보이고 있다.
- 아덴은 서양 철학, 서양의 사고방식 전체의 핵이다. 그 곳에 하나님은 바울을 세우시고, 소크라테스와 같이 심판 자리에 바울을 세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을 말하게 하시고,
- 새로운 것을 말하고 새로운 것을 듣는 것 말고는 하는게 없는 철학자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계신다.
- 어쩌면 서양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사고쳬제를 바로 이 17장에서 하나님은 영적으로 해체시키시고, 하나님의 사고체제를 심으셨는지 모른다.
- 이 바울의 설교는 순수 이방인들에게 하는 첫 설교였다. 그리고 서양사고의 핵에서 퍼진 설교이다. 그의 설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는 모른다.
- 그러나 우리는 서양의 사고체제가 그때로부터 완전히 기독교사상으로 바뀐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 하나님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의 삶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 다들 본문 속 바울처럼 나만의 아레오바고에 서 있는 새 소크라테스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결론
- 진짜에 대한 열정으로 복음을 사는 우리 되기를 원한다.
-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레오바고에 당당히 서서 새로운 일을 하는 새 소크라테스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