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잠언 10:15-23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서론
매일 여러가지 온세계의 뉴스들로 시끄럽지만, 코로나부터 인종차별 시위가지 아무래도 미국이 단연 시끄럽다. 말도 안되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흑인이 목숨을 잃으면서 흑백갈등이 다시 점화되었는데, 이 풀리지 않는 문제에는 사실 눈에 보이는 과잉진압이 문제가 아니라, 백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깔려있는 자기 자신들도 존재하는지 모르는 우월주의에서 비롯된다.
백인이 그렇게 과잉진압으로 죽는 경우는 없다. 미국 신학교에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소상히 말하기를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위해 항상 아빠를 불렀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그 친구는 다행인 것이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그들의 행동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늘 본문은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외부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본론
우리는 겉을 다루는 일에 힘쓴다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을 왕으로 삼기 위해 이새의 집을 찾아 아들들을 차례대로 관찰할 때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본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한 나라의 왕 후보를 봤을 정도면, 뭐 우리의 안목은 말할 것도 없이 더 겉모습만 보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물건이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디자인이 별로이면 잘 안팔린다. 사람의 안목을 사로잡으려면 첫인상이 중요하기에 그렇다. 사람들은 내부 보다는 겉모습에 더 신경을 쓰고, 더 끌린다. 젊은 사람들이 더욱 그렇겠지만, 몸에 좋은 것을 먹고 마셔서 몸을 챙기는 것보다는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것을 타고, 좋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런데 결국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오히려 건강이다. 우리가 먹고 마신 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듣고 읽은 것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내면은 반드시 외부의 결과로 나타난다
15절에서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했다. 이 구절은 오해하기 딱 좋은 구절이다. 잠언에서 부라는 것은 대부분 지혜롭게 쌓지 않은 부에 대한 가르침이고 부정적인 면을 많이 강조한다. 여기서 부 또한 부자가 재물을 쌓아 그것을 자신의 견고한 성처럼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멸망은 폐허를 의미한다. 부자의 견고한 성벽의 반대 개념으로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부자는 결국 의지할 것을 부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부와 근심을 겸하여 받게된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는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 가난한 자의 궁핍 또한 마찬가지다. 부자와 같이 의지할 곳 조차 없는 사람들. 그들 또한 주님을 신뢰해야한다. 하나님으로 성벽을 쳐야한다. 그럴 때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는 줄로 믿는다.
16절에서 의인의 수고는 생명이라 했다. 결국 우리가 성실하게 수고하는 것,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그 수고가 하나님과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흘린 땀 한방울 한방울이 생명이 되어 돌아온다. 상급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악인의 소득, 자신을 위해 남을 착취하고, 손해보게 하고 해치는 일은 결국 죄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삶을 대한 자세가 외부의 결과를 가지고 온다.
17절은 훈계를 받는 자와 받지 않는 자에 대해 가르친다. 하나님의 훈계를 받을 수 있는 사람과 받을 수 없는 사람의 길은 달라진다 가르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마음밭은 결국 겉으로 보이는 삶의 길로 증명된다는 것이다.
18절에서 20절은 입과 말에 대해서 가르치는데, 18절을 보자.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라 했다. 마음 속에 미움이 있으면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된다. 그리고, 또 중상, 비방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것 뿐인가? 말을 쓸데 없이 많이하게 된다. 왜? 숨겨야할 게 있고, 핑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음 속이 청결한 자는 그럴 일이 없고, 입술은 자연히 제어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의 혀는 순은같이 맑은 것이고, 악인의 마음은 아무가치 없는 불순물이 잔뜩 섞여 있는 것과 같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지켜야할 줄로 믿는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
솔로몬과 지혜자들은 마음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 같다. 잠언서 곳곳을 통해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다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강조되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대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물론 순수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중요한 한가지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도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겉으로 보이는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지 내 내면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불화가 있다면, 그 불화를 표면적으로 화해로 해결하려고 하지, 내 성격이나, 상처나, 기억 등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조금 더 우리의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할 줄로 믿는다. 마음을 다룰줄 아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인 줄로 믿는다. 청결한 마음을 통해 지혜를 얻고, 지혜로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다. 하나님의 시야는 우리의 시야와는 다르다. 우리는 마음보다는 겉을 다루는 일에 익숙하다. 치장하고, 단장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에만 신경쓴다. 그러나 지혜는 속에서부터 작용하고, 반드시 외부의 결과로 나타난다. 외부를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내부를 바꿔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셨다. 그렇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보고 체험한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법, 용서하는 법, 더불어 사는 법, 거짓을 말하지 않고 사는 법을 이미 본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 지혜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지혜로 삶이 변화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