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짜리 아파트

서론

한국의 주상복합 아파트

우리가 사는 한국은 땅이 협소하기에 아파트가 거주지로서 여러모로 선호되고, 예부터 중산층의 대표적인 기준으로써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어려 서양의 나라들에서는 정반대의 개념인 것이 사실이다. 아파트는 한 주인 혹은 한 회사가 아파트 전체를 소유하고 월세로만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세만 내면 수리와 관리, 심지어 화재경보기 베터리 떨어진 것까지, 모든 것을 주인에게 말하면 다 해결해주기 때문에, 소음이나 프라이버시와 같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아파트에 산다.

본론

고대 로마의 아파트 ‘인슐라’

고대 로마시대에서부터 이 거주형태는 동일하게 존재했다. 아파트 형태의 이 거주지를 ‘인슐라’ 라고 불렀는데, 현재 로마에 남아 있는 유적도 있다.

고대 로마 인슐라

보통 인슐라는 잦은 화재 때문에 층고제한이 있어서 3-4층건물이었는데, 거리와 맞닿아 있는 1층은 상점들이 있어서, 커뮤니티의 왕래가 이루어지는 삶의 터전이었고, 2층부터는 주거시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요즘 비싼 아파트인 주상복합시설이 이천년 전에도 있었다.

고대 로마 인슐라 2

말씀드렸다시피 이 인슐라는 하층민들의 주거공간이다. 위생적이지 않고 더럽다. 이 주거공간에 대한 묘사들을 보면, 위층에서 그냥 오수를 창문 밖으로 버리고 화장실과 욕실은 중간에 공용으로 사용한다. 방은 고시원처럼 작고 꽉 들어차있다. 엘레베이터가 없는 시절이다. 물을 끌어올릴 펌프도 없는 시절이고, 화재가 났다하면 높이 사는 사람들은 다 죽어나가는 시절이다. 지금은 팬트하우스가 가장 상층이지만 3층은 기피하는 층이기에 가장 하층민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고대 로마 인슐라 3

바울의 드로아 방문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지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 지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큰 소요가 있은 후, 마게도냐를 거쳐 여러 교회들은 방문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가 고린도로 간다. 그렇게 내려가면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모아 이제 안디옥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유대인들의 음모가 있어, 다시 육로를 통해 여러 지역교회 대표들과 함께 에베소쪽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팀원들을 먼저 드로아로 보내고, 누가와 바울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보낸 후 배를 타고 건너 드로아에 도착하게 되었다. 드로아는 에베소에서 떠나올 때에 들러 개척한 교회가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마지막날 밤의 모임

이 교인들이 모인 곳은 3층짜리 아파트다. 그리고 3층이다. 이 조그마한 가정교회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진 이들의 모임인지는 3층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대충 감 잡을 수 있다. 이들이 모인 날은 주간의 첫날이다. 지금의 주일이고, 주일에 같이 떡을 떼며 같이 식사를하고 예수님을 기념하려 모였다.

이들은 대부분 노예들이나 소작농들이었을 것이다. 로마시대는 대부분 이 두 부류의 신분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들이 모인 시간은 우리처럼 주일 아침 11시였을리가 없다. 해야할 일, 맡겨진 일 다하고 저녁에 모여서 피곤한 몸으로 모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 바울이 그 곳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니 어찌 일찍 헤어질 수가 있고, 아쉬운 마음을 달랠수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가르침을 받는다.

무교절이 지났으니 날도 따뜻할 것이고, 3층에 등불을 켰으니, 공기도 탁할 것이고, 몸도 일을 하고 왔으니 노골노골해서 졸리기 딱좋다. 유두고라는 청년은 졸음을 이기려 바깥 공기 맡으려고 창문에 걸터앉았다. 그런데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1층으로 떨어져버린다. 성경을 읽을 때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를 항상 염두할 필요가 있다.

결론

성경은 교훈을 주고 가르침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했다. 성령께서 누가를 통해 독자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가르침이 있다. 유두고의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 것일까.

삼층 빌딩은 우리의 삶과 참으로 닮아 있다. 현업에 종사하는 1층과 가정이 되기도 하고 교회가 되기도하는 2층 3층은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 말씀드렸듯이 당시 로마사회는 많은 사람이 여전히 노예이며 소작농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모인 이들은 대부분 낮 시간 내내 일을 하다가 피곤한 몸으로 모여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오늘 우리처럼. 얼마나 피곤했는지 잠을 깨려 창가에 앉아서 들으려고 노력하다가 떨어져 죽고만다.

여기까지만 성경이 말해줬다면 이 얼마나 안타갑고 슬픈 기독교인들의 현실에 대한 회고인가.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살리시는 성령님과 바울의 능력이 놀랍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미 독자들은 안다. 바울의 놀라운 사역도 이미 많이 알고 있다.

성경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1층 신앙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와 부활의 능력을 알려주고 싶다. 유두고가 3층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1층으로 떨어졌다. 마치 신앙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다가 일터 바닥에 내팽겨져친 것 같은 모습이다. 예수님은 바울을 통해 다가와 몸을 포개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주신다.

사도행전 20:12은 말한다.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우리는 이런 힘든 상황일수록 예수님이 필요하다. 나의 도움 어디서올꼬 천지 지으신 나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예수님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가는 1층에서부터 2층 3층까지 다 아신다. 우리의 1층의 삶을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려내어 높은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기 원하신다.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옮겨주기 원하신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일하는 1층만 있는 것도 아니고, 2층 3층에서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3층짜리 아파트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활의 능력으로 붙드시고, 세우시고, 살리실 것이다.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시고, 삶들이 살아나시고, 회복되시어 ‘적지 않은 위로’를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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