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1-5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가려주시는 은혜
홍수가 끝나고 노아와 가족들은 배 밖으로 나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은 그 향기를 받으시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 하셨다. 그리고, 노아와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복과 동일하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리고나서 뜬금 없이 동물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 신학계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많이 지지를 받는 의견은, 인간이 스스로 힘을 들여 먹고 살게되면서 부터, 먹는 것의 결핍에 의해서도 많은 죄악이 일어났고, 홍수 후에 먹을 것도 부족한 때에 그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 주시고 넘어가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나서 부끄러움을 알게되고, 숨어있자, 하나님은 꾸짖으시지만,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기 위해 가죽옷을 허락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와 후손들에게 동물을 먹도록 허락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항상 가려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과오를 잊으시고, 흠을 드러내시지만 또 가려주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삶을 지탱하는 것을
그렇게 동물을 먹을 것으로 허락하시고 한가지 명심할 것을 단단히 일러두시는데, 피를 빼고 먹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사실 피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 피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 고대 시대에 피라는 것이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생명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명하고 계신다. 이전에는 식물만 먹었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했던 이 생명에 대해서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 오래된 가르침을 이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도 있겠지만, 정신적, 감정적인 것들이 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동물들의 생명 또한 귀하게 다루기를 원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끼리 말로 감정으로 서로를 죽이기도 하는 이런 사회를 어떻게 보실까. 서로의 감정도 귀히 여겨야 할 줄로 믿는다. 홍수 심판으로 인해 가려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우리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우리의 허물을 덮으시고,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시고 계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누리시는 하루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