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8:6-10
-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하루를 사는 힘
오른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하루하루를 대하는 자세이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이삭에 대한 약속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 같이, 세 나그네를 보게된다. 물론 고대시대에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마땅한 행동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행동은 과한 면이 없지 않다.
나그네 세 명의 행색이 남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극진히 대하는 것을 넘어서, 사라에게 가서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빵을 만들라 했는데, 이 양은 잔치 수준의 양이고, 좋은 송아지 요리는 도저히 일반인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후에 고운 가루와 좋은 송아지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기준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규모있는 잔치를 벌이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것이 지금 하나님의 언약을 대하는 매일매일의 아브라함의 삶의 모습이다.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기다림과 기대가 있으니,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99세여도 붙든 언약이 있으면 이런 매일의 삶을 산다. 이런 기대와 에너지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한다.
언약에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
둘째는, 언약에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9절에서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이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인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10절부터 ‘그들’ 이라는 주어가 갑자기 ‘그’로 바뀌고 그 뒤로는 여호와라는 주어가 사용된다.
어디서 무엇하는지도 모르는, 본적이 없는 여인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그 때부터 여호와인 것으로 인식했고, 그렇게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나서 내년에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에 사라는 속으로 웃고만다. 그 웃음에 사라도 혼이 난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우리가 너무나도 잘아는 진리이지만, 이 고백을 삶 속에서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능하지 못한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언약이 오늘 저와 성도님들의 삶을 이끌어 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