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유대인 열심당원들의 음모를 알아챈 천부장은 바울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로 한다.
- 가이사랴는 팔레스타인 지역 로마군력의 본거지이고, 총독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었다.
- 오늘은 당시 역사적 배경과 인물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가이사랴와 유대인들의 분쟁
- 오늘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호송되는데, 이 가이사랴라는 곳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페니키아지역까지 관리하는 총독이 주둔하는 곳이었다.
- 헤롯왕이 화려한 궁을 바다 곁에 건설해 살다가, 헤롯왕가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총독들이 그 곳에서 살게되었다.
- 그렇기에 많은 로마군인들이 주둔해 있었다.
- 가이사랴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못지 않게 시리아 이방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 두 부류의 민족간에 적지 않은 다툼이 있었다.
-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유대인인 헤롯이 그 도시를 지었기 때문에, 그 도시가 그들이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시리아인들은 지역이 시리아일 뿐만 아니라, 헤롯왕이 많은 이방신들의 조각들로 건물들을 꾸미고 신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뿌리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 유대인들이 수적 유리도 있고, 더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리아에 주둔한 군인들이 이방인들을 더 선호 했다.
- 두 부류 간에 갈등은 더 심화되어서, 벨릭스 총독은 군대를 동원해서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 이런 벨릭스의 행동을 유대인들은 네로황제에게 상소하고, 또 시리아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거주 권리를 박탈할 것을 상소하고 하면서, 그것을 계기로 유대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 그리고 그 유대전쟁은 예루살렘성전을 포함해 많은 파괴와 살상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이 로마의 식민지로 변하는 결과를 불러온다.
벨릭스
- 이 벨릭스 총독이라는 인물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니다. 사도행전에서 비추어지는 모습은 그냥 근엄하고 흔한 로마의 총독처럼 비추어질 수 있지만,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 본문의 배경 조금 전, 54년까지 로마의 황제는 클라우디오였다. 클라우디오의 어머니인 안토니아의 종이었던 벨릭스와 그의 형제 팔라스는 자유인 신분이 되었고, 클라우디오가 팔라스를 매우 아끼면서, 벨릭스는 전례 없는 노예출신 총독이 되었다.
- 헤롯 아그립바의 딸과 결혼하고, 또 클레오파트라의 손녀와 결혼하면서 정치적으로 안정을 꾀했지만, 정치적인 능력이 결여되어서, 벨릭스에 대해 역사는 노예의 본능을 지닌 폭도였다라고 기록한다.
-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되어 기간 동안에도 벨릭스가 시장에서 단순히 두 부류간의 싸움이 나자, 유대인들을 살육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일이 있었다.
- 벨릭스는 모든 일을 이렇게 무력으로 진압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폭도 기질이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대인 전쟁으로까지 번지게 되고, 결국 클라우디오 다음 황제인 네로황제의 치하에서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함으로 질책 받아 자리에서 물러나게된다.
하늘 나라의 인생들
-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을 드려다 보면, 로마라는 이 거대왕국의 권력 다툼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이들의 인생살이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안에 살아가는 바울의 인생과 너무 판이하게 달라보인다는 것을 보게된다.
- 천부장의 편지를 다시 한 번 보면, 그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자신에게 폐가 안되게, 상황을 미화해서 기록했는지를 보게된다.
- 벨릭스가 좋아하지 않는 유대인들 폭도들에게서 마치 로마 시민인 바울을 극적으로 구해낸 것처럼 거의 소설을 쓰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심지어 바울이 신분이 제일 고귀하다. 벨릭스는 종출신, 루시아 천부장은 돈주고 샀고,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다)
- 한 번 언급했지만, 천부장이 더 이상 성공하는 길은 정치에 입문하는 것 밖에 없기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 벨릭스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안에 능력 안에 있는 것, 무력으로 자신이 맡은 자리를 지키려고 더 더 무자비해지고 있다.
- 이러한 피 튀기고 치열한 로마제국과 그 안에 인생들의 모습과, 비록 죄수되어 묶여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그 안에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바울의 인생은 상대적으로 오히려 평안해 보이기 까지 한다. 죄수인데.
- 우리의 많은 인생이 벨릭스와 루시아와 같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하며, 삶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 때로는 루시아처럼 우리 스스로를 과장해야할 때도 있고, 벨릭스처럼 우리가 가진 것을 남용해야할 때도 있다. 살기위해서.
- 바울은 어떠한가? 물론 바울도 가진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서라면 가진 시민권도 감추려고 한다.
- 벨릭스와 루시아와 바울이 다른 것은 이 땅의 삶을 유지하기를 택하는가 아니면 하늘의 삶을 택하는가의 차이이다.
-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삶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바울이 택하고 있는 삶이다. 그 삶은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누리게 한다.
- 벨릭스는 앞으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렇지만, 벨릭스는 그 복음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그를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요소다.
- 우리의 삶이 벨릭스와 같은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복음에 무관심한 삶이 되지 말아야 한다. 복음을 듣고 그것에 반응하는 삶, 증거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는 복음에 무관심한 것이다.
- 복음에 반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것 또한 진정한 제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큰 적임을 믿으라.
결론
- 예수님께서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한다.
-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아둥바둥하게 되면 그냥 죽게될 것이지만, 복음을 살기 위해 나의 자아를 죽여갈 때에,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 이미 살고 있는 줄로 믿는다.
- 우리의 인생이 루시아 천부장과 벨릭스 총독의 1차적인 삶의 모습을 넘어 복음과 하늘이라는 이 높은 차원에 기준을 맞추고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