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15-21
-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서론
잘 아시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면 들으시는가?” 에 대한 몇가지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예레미야 29:12 말씀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성경 속 수많은 인물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응답을 받았다.
둘째, 신약으로 와서 요한일서 5:14을 보면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셋째, 믿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설명치 않아도 잘 아신다. 하나님은 믿고 구하는 것에 귀 기울이신다.
본론
하나님이 우리를 들으시게 하는 방법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의 성취는 커녕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 자식하나 생기지 않았다. 사래는 포기하고 다른 여인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 후로도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아브람은 99세 사래는 90세가 되었다. 그때 하나님이 다시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너와 너의 아내의 이름을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바꾸고 그 사이에서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 있던 아브라함은 엎드려서 그 말을 듣다가 웃어버린다. 요즘 말로 어이가 없는 것이다. 90세인 사라가 아이를 어떻게 낳겠는가.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청한다. “하나님, 저희에게는 이스마엘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그 약속을 성취하게 해 주십시오.” 이스마엘도 노년에 갖게된 아이이고,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아이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아이라고 믿어 왔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애정을 쏟고 기대를 해왔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렇게 청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하나님은 그 청에 단 칼에 “No” 하시고, 너에게 반드시 아이를 줄 것이고, 그 아이를 통해 언약의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덧 붙히시기를, “너가 그렇게 청했으니까, 이스마엘도 큰 복을 누리고 큰 나라가 되게 해주겠다” 라고 청에 응답하신다. 놀라운 것을 우리가 본 것이다.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받으려면, 얼마나 고생을 할 때가 많은데, 아니, 하나님 면전에 웃으면서, 믿지도 않으면서, 구한 청을 이렇게 응답하신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이렇게나 응답받기 쉬운 것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그의 많은 자손들이 생겨나고, 그를 통해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스마엘 또한 복을 누리고 큰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들으실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가 끊임 없이 하게된다는 것이다. 그걸 정확히 안다면 조금 낳을 것 같은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으셨다.
12장에서 큰 나라를 이루게 해주겠다 약속하셨다. 15장에서는 유업을 이을 자는 양자가 아니라 친자식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7장에서는 친자식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날 친자식이라고 알려주셨다. 조금씩 정보를 더 주시면서 정확한 것을 알리시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브람이 한 것은 알리신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 뿐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믿음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잘 보이지 않고, 정확히 모르겠지만,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실 수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가면 진짜 웃음으로 바뀐다
신뢰하고, 인내하고, 기다린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이제 약속의 성취 목전에 두고 있는데, 하나님의 계획이 터무니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모든 애정과 계획과 뜻이 이스마엘에게 맞추어져 있는데, 99살 노인에게 아들 이야기를 하시니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하나님이 얼마나 유머감각이 있으신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17절에 “웃으며” 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가, 그렇게 웃는 아브라함에게 19절에 “그 이름을 ‘이삭’ 이라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이 ‘이삭’ 이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다. 이삭이라는 이름은 “웃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받아치신 것이다. 하나님 참 재밌지 않으신가? 어라? 웃어? 내가 정령 아들을 줄 것인데,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어라! 하나님한테 호되게 혼나는 것이다.
또 재밌는 것은, 이스마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뜻인데, 그것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복을 주겠다. 하나님은 언어의 마술사다. 보통분이 아니시다. 중요한 것은 이게 웃기다는게 아니라, 사막에서 하갈이 죽어가면서 받은 이름이 “이스마엘”이고, 아브람이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기대를 다 잃고 헛웃음 짓다가 받은 이름이 “이삭” 이다. 그런데 결국은 그 이름의 복된 의미를 부여하시고, 현실화 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정말로 들으셨고, 헛웃음을 진짜 웃음으로, 오늘 제목처럼 찐웃음으로 바꾸셨다. 이런 은혜가 성도님들에게도 다 일어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신다. 그런데 위대한 계획은 하나님이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듯이 길어낼 수있는 것 아니다. 우리가할 수 있는 것은 인도하심따라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신실한 발걸음 끝에, 절망 중에서 하나님이 들으심이 위대한 축복 가운데 들으심으로 바뀌고, 헛웃음이 찐웃음으로 바뀌는 역사가 있을 줄로 믿는다. 신실함과 믿음으로 이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