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언 3:13-18

서론

기숙학원에 있을 때에 남매가 있었는데, 지혜와 명철이었다. 누나가 지혜였고, 남동생이 명철이었는데, 오늘 말씀을 읽다보니, 그 둘을 얻은 남매의 부모님은 말씀대로 복이 있는 분들이셨다. 이름을 멋있게 잘 지으신 것 같다. 오늘 말씀은 지혜 명철 그리고 복이라는 세 가지 단어로 시작된다.

본론

창조자가 의도하신 것

복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떠올릴 만한 것들이 몇가지 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칠복이 대표적으로 생각이 난다. 그런데 우리가 막연하게 ‘복’하면 인생이 잘되는 것 정도에서 인식하기 쉬운데, 성경에서 의미하는 ‘복’의 참된 의미를 들여다 본다면, 진정한 복이라는 것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최적화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먼 곳에서부터 가나안 땅으로 왔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시고, “복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대로 복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의도하신대로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모습대로 인생을 살았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라고 하셨는데, 반복되는 “복이 있나니” 앞에 오는 문장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는 거리가 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대로 사는 삶이라는 정의를 대입해보면,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복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우리가 가난하고 핍박받는 삶만 살으라고 하신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예수님 당시의 설교를 듣던 회중들이 대부분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이었음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포인트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국을 소유하고, 만족을 느끼며,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를 통한 번영과 확장과 충만함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그리고 십계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원하신다. 그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다.

오늘 본문도 이렇게 말한다. 지혜라는 것은 장수하고 부귀가 있게하며, 생명나무가 되어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의도하신 삶, 이 넘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지혜와 명철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경외하는 삶을 택하시기를 축원한다. 건강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찾고 구하면 만날 수 있다

금보다 더 귀하고 은보다 더 귀한 지혜와 명철은 아이러니하게도 땅을 파고 강물에서 모래를 흔들어내서 힘들게 구할 수 있는 것 아니다. 그런데 마치 어려운 것처럼 아무나 찾애내지 못한다. 그 이유는 지혜의 시작은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에서 시작하는데, 그게 애초에 안되는 것이다. 길이 열리지를 않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에 대한 해석이 신학적으로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1) 경외함이 지혜로 인도한다 혹은 앞선다. (2) 경외가 지혜를 앞서기는 하지만, 얻은 지혜가 동시에 더 큰 경외함으로 인도한다. (3) 경외함은 지혜와는 개별적인 것으로 지혜를 떠 받친다. 경외함이 없어지면 지혜로움도 무너진다. 결론적인 공통적 합의점은, 쉽게 풀자면 경외함이 지혜라는 과목을 듣기 위해 선이수해야하는 필수과목이다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이 길을 열어내지 못한다. 이 우물을 길어내지 못한다. 하나님의 의도하신 번영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긍휼이 여겨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할 줄로 믿는다.

지혜와 명철이 가져오는 것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14절에 “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지혜와 은, 정금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성경이 비교하고 있는 것은 은과 금이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는 이익과 지혜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익이 비교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간에 이익을 먼저 계산해 보고 하게된다. 은과 금이 주는 이익은 우리가 만원 혹은 5만원짜리 지폐 하나 주웠을 때 받는 이익과 비슷한 것이다. 일회성 이익. 그런데 지혜라는 것은 우리에게 부를 가져올 수도 있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건강하신 육체와 정신을 가져올 수도 있고, 이롭게하는 삶을 가져올 수도 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 한글로 표현되기에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는 단어인데. 사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구했다. 하나님께 들을 수있는 자세, 즉 하나님의 말씀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따라야할 것으로 여기는 삶을 자세를 구한 것이다. 경외함은 지혜의 근본인줄로 믿는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 뿐만 아니라 번영과 넘치는 삶 또한 덤으로 받는다. 덤이라기 보다는 지혜가 가져다 준 것이다.

이런 삶을 사시기를 축원한다. 그런 솔로몬이 끝이 망가져버린 것은 왜일까? 자기가 높아져 듣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다. 듣는 마음을 끝까지 경외함으로 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며 복이 있으라 명하신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아브라함을 또한 부르시고 그에게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라 하셨다. 하나님의 언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복이라는 것을 그 명하신 순간에 우리 손에 쥐어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래형으로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 복을 가까운 미래에 혹은 먼 미래에 취하기 위해서, 찾아야 하고, 구해야하고, 바른방법을 택해야한다.

성공적으로 복을 누리는 삶을 위해서는 결국 바른 길을 알고 따라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이 지혜와 명철이며, 그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부터 시작된다.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 그리고 그 복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 모든 이들이 누려야하는 복이다. 그 복 자체가 추구해야할 최종점은 아니며 그 복이 가져다 주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을 우리는 누려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지혜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 듣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샬롬이 여러분의 삶 속에 도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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