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잠언 17:16-19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지혜는 살 수 없다
잠언서 초반에 지혜자는 독자들을 향해 어떤 값을 치루더라도 지혜를 사라고 외쳤다. 물론 그것은 지혜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라는,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라는, 비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이다. 오늘 본문에서 미련한 자가 손에 돈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함은 어찜인고 라는 지혜자의 한탄을 듣게된다.
심지어 이 미련한자는 지혜자의 말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정말 돈으로 사보겠다는 행동을 취한다. 현대사회는 교육의 댓가로 등록금, 학원비, 강의료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리스 시대 전에는 가르침의 댓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지혜라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받고 전해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지혜는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이웃들
그렇게 운을 띄운 지혜자는 여러 이웃들에 대해서 가르침을 준다.
첫째, 친구가 나오는데, 여기서 친구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사랑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위급한 때에 의지가 되는 형제 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이웃이라고 가르친다.
둘째, 미련한 이웃이다. 성경은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을 큰 미덕으로 삼는데, 잠언은 특별히 이 보증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예외로 삼는다. 어찌보면 보증은 참으로 자만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없는 능력을, 있는 것으로 내가 보증해 준다는 것은 도가 지나친 행동이다.
세번째, 한 부류의 이웃이 더 나온다. 사랑하는 이웃이기는한데, 다툼을 사랑하는 이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높이는 이웃이다. 상대적으로 자신 보다 낮은 자들을 생겨나게하는 행위를 하는 이웃이다. 이런 이웃들은 죄와 파괴로 향하는 이웃들이다.
좋은 이웃, 미련한 이웃, 파괴적인 이웃이 있다. 우리가 미련하고, 파괴적인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이웃은 내가 되기 원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과 은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돈으로 성령을 구하던 시몬과도 같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경외하시고 지혜로 충만해지기를, 좋은 이웃이 되어줄 수 있기를, 언제나 사랑하는 이웃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