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느헤미야 4:6-14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서론
물이 든 컵에서 목이 말라 한 모금을 쉬원하게 마신 후에 다시 컵을 보면, 이 컵이 부분적으로 비었다고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부분적으로 차있다고 생각이 드는가? 물론 비어있다는 것 보다는 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비춰질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반대로 이제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목이 마를 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느헤미야가 유다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왕에게 부탁하여 그 곳에 당도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리드해서 다 무너지고 타버린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힘이 닿을 때마다 성벽을 쌓아올려 주변 사방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4:6에서 이렇게 스스로 기술한다.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느헤미야는 절반 정도가 이루어졌다고 봤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유대인들을 적대시하던 동서남북을 둘러싸고 있던 이방 민족들의 반응이다.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메꾸여져 간다” 오히려 이방민족들이 완성된 예루살렘 ‘성’을 상상하며 마음이 조급해 지고, 느헤미야는 절반 정도 이르렀다는 사고를 하고 있다. 느헤미야와 유대인들과 같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원수, 사탄보다 더 우리의 상황을 작게 혹은 좋지 않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론
우리의 시야를 바꾸자
4:1 에서 사마리아 지방의 지도자였던 산발랏은 성을 건축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한다. 그런데 산발랏은 크게 분노해서 그것을 행동에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비웃었다. “이들이 예배를 드리려는 것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 건가? 일을 마치려는건가? 잿더미 속에서 다시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는건가?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가 잘되는 것을 보고 분노한다. 그런데 그 분노를 분노가 아닌, 비웃음, 멸시, 무시, 부정적인 말로 표출한다.
여러분의 삶에 비웃음이 있고, 멸시가 있고, 무시가 있고, 부정적인 반응이 있는가.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시야를 바꾸어야한다. 바로 그 때 우리의 삶은 원수들이 분노할만큼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격받을 때에, 원수들은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잘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시야를 갖게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멀티 플레이어가 되자
당시 유다를 둘러싼 동서남북의 민족들은 유다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에 느헤미야가 유대인들과 함께 한 것은 기도와 방비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기 원하는 것은 기도만 하는 것도 아니고, 방비만 하는 것도 아닌,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스스로 방비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기가 떨어지고, 낙담이 되는 상황이 올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계속해서 각처에서 삶으로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사방에서서 우겨싸는 것들을 막으시기 위해 유대 백성들에게 기도와 방비와 자신이 맡은 일들을 동시에 하는 것을 넉넉히 할 수 있도록 하셨고, 헌신의 마음도 주셨다. 치우치지 아니하고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
전세계가 그렇듯이 우리나라도 코로나로 인해 사회가 어지럽다. 경제적으로 압박 받고, 정치는 이 상황을 틈타 서로 헐뜯기 바쁘다. 우리 개인의 삶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모든 요소들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고, 부족하고 결핍한 것 같은 이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할 사고방식은 비어있는 것 보다는 차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심지어 사탄들도 우리의 차 있는 것을 빼내기 위해서 차 있는 것을 보는 판에, 우리가 비어있는 것을 바라보면 되겠는가? 비워진 것은 하나님이 채우실 영광의 분량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잘되고 있다. 하나님의 스토리는 항상 회복과 채워짐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비워져야할 때는 겸손해 지면 된다. 겸손해진 만큼 하나님은 채우시고 회복시키신다.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 되고 있다.
결론
이 잔이 많이 비워진 것은 우리의 시야이지만, 이 잔이 채워질 공간이 많은 것은 하나님의 시야이다. 우리는 시야를 바꾸고, 우리가 맡은 자리에서 연장을 들고, 적을 주시하면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생각보다 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