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대하는 말씀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느헤미야 8:8-12

서론

대학교에는 동아리라는 것이 있다. 강제성이 없고, 활동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 자원하여 참여하고, 자체적으로 운영이 된다. 그리고 흥미가 없어지거나,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또 탈퇴를 하기도 한다.

대학 시절에 찬양 선교단에서 활동을 했는데,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스팩이 되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들 활동을 했다. 면허도 갖 딴 초보들이 1톤 트럭을 빌려서 장비를 싣고 경북 영천까지 장마비를 뚫고 군부대에 예배를 인도하러 가기도 하고, 한겨울에 기도원에 예배를 인도하러 갔다가 보일러가 터져서 떨다가 오기도 했다. 남는 건 영성과 추억 밖에 없지만, 청년들이 젊은 날을 기꺼이 투자해서 운영되던 동아리였다.

이런 헌신과 맨땅에 헤딩하는 수고의 원천은 다름아닌 “자발성”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강제하지 않았기에, 그 모든 활동에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

본론

말씀에 대한 자발성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지역의 귀환자들과 함께 무너진 성벽을 쌓고 문을 달아 완공을 했다. 그리고 노래하는 자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이들을 세우고 정비를 마쳤다. 외적인 것들을 아우르고 이제 영적인 것들 또한 회복해 가는 과정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절기에 나아와 학사 에스라에게 말씀을 가져와 읽어주기를 청한다. 백성들이 스스로 말씀을 읽어주기를 청하는 장면은, 성경전체를 보아도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장면이다.

서두에도 말씀을 열며 말씀드렸다. 자발성이라는 것은 강력한 힘이 있다. 보통 예배를 드릴 때에 예배인도자들이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예배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열려지느냐,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나아오는 예배자들은 그런 모든 과정을 생략해도 문제가 없다. 마음이 이미 열려져서 성전으로 나아오기 때문이다.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자발적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대면 예배를 잘 드리고 계신지 모르겠다. 어디에 계시던지 마음이 말씀을 향해 열려있고,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을 쪼갤 줄로 믿는다.

자발성, 진정성의 결과

한 동안 티비에서 가수들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누려오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있는데, “진정성” 이라는 단어이다. ‘무슨 뜻이다’ 라고 정의 내리기에 쉬운 단어는 아닌데,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심을 다해 그 노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처럼 자발적으로 말씀으로 나아가는 것을 ‘진정성’ 이라고 표현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 진정성을 보실 것이다. 그리고 그 심령 가운데 말씀의 힘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이 하나님의 역사는, 아브라함을 움직이게 하시고, 모세를 부르시고, 바울이 헌신케 하신 그 역사인 줄로 믿는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아간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을 파고들어 ‘다 깨닫게 되었다’ 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울게된다. 무슨 슬픔 이었을까?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들과 그리고 자신들이 저주의 항목에 들어가 있는 모든 것들을 당한 기억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잊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킨 하나님 앞에서 울었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나아갈 때에 동일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그리고 일어난 많은 일들 가운데 역사 해주신 하나님, 그리고 죄송함, 감사함이다. 말씀을 향해 자발적으로 나아가 이 은혜를 말씀을 대할 때마다 경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말씀이 우리 심령에 하는 일

그렇게 울고 있는 백성들에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이렇게 명한다. “오늘은 하나님에게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라” 그제서야 백성들은 슬픔이 아니라, 구해 주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회복시켜주신 은혜에 감사를 기쁨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다 같이 음식을 나누고 단 것을 마시고 같이 기뻐한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말씀으로 나아갔을 때에, 말씀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우리의 심령에 있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 기쁨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우치고 돌아오기 원하신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돌아와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일이니 조용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이 얼마나 우리를 위한 말씀인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힘을 얻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자발적으로 말씀을 읽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견,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싶은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아갈 때 비로서 말씀을 밝히 알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현재의 내 상황은 왜 이런지, 원인과 해결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늘 읽던 같은 말씀도 그렇게 나아가면 마음에 닿아 은혜가 되고 감동이 있다. 그리고 때론 죄송한 마음에 슬픔이 있을 수 있고 회개와 애통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그 슬픔과 애통함을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변함 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회복의 기대로 나의 시선을 옮겨 준다. 마음 열고 이 말씀의 은혜를 각자 계신 그 자리에서 누리시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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