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지혜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언 13:1-4

서론

우리가 매일 싸우는 대상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의지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하면서 살아갈 수 없기에, 혹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서 “의지”를 동원해서 나를 움직이게끔 해야하는데, 그게 매일 아침 일어나기 직전부터 우리가 싸우는 첫 대상이 된다.

잠언을 가만히 읽다보면, 먹는 것과 입을 여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적지않게 나온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좋은 것을 누리고, 또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는 멸망을 맞게된다고 했다. 입은 보통 우리가 대화를 하기 위해서나 음식섭취를 위해서 벌린다. 특별한 의지가 필요한 일들은 아니다. 그런데, 반대로 귀는 들을 때 사용하는데, 듣는 일은 의지를 가지고 하지 않으면, 다 소음일 뿐이다. 듣고 있는데 입력이 안된다. 이 의지에 대해서 오늘은 나누고자 한다.

본론

순종의 비결

아브라함과 이삭의 희생제사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접한 이야기이긴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물론 고대 시대에는 성인 남자의 의견 말고는 거의 무시되었던 세상이고, 인신제사나 아동제사는 그렇게 특별날 것 없는 제사 방법중 하나였지만, 우리나라도 심청전을 통해서 익숙하지 않는가? 어쩌면, 하나님은 흔한 방법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흔한 신의 요구사항에 반응했고,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느 신들과는 달리 그것을 막으시는 사랑의 표현을 담은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철저하게 이삭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해석한다면, 이 이야기는 더 불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이삭은 초등학생 꼬마가 아니었다. 먼거리를 아버지와 함께 동행하고 번제에 쓸 그 많은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만한 건장한 청년이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100살이 넘은지 한참이다. 아버지가 밧줄을 가지고 낑낑거리면서 자신을 묶으실 때 도와드려야할 판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건 단순한 순종의 범주를 이미 많이 넘어서는 행동이 아닌가? 심청이의 효심이 픽션일지라도 고상할 것인데, 이삭의 행동은 그런 단어로도 담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순종의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사람의 힘은 아닌 것이 분명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귀한 아들이니 끼고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과 자신의 사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며, 자신이 믿음 하나 가지고 가나안 땅에 와 살게된 이야기를, 또 이삭 자신을 어떻게 낫게 해주셨는지를 다 전해주었을 것이다.

순종의 비결은 대상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는 것, 그 하나님을 믿는 아버지를 인정하는 것. 그래서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순종을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우리의 믿음을 확고히 해야할 줄로 믿는다.

배움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삭처럼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었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대해서 몸소 배우고 체험했겠지만, 우리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 아니, 그걸 겪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서두에 의지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하루하루 작은 의지를 발휘해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변화시켜갈 수 있다.

말씀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냐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일수록 난데없이 말씀이 떠오른다. 말씀을 모르면, 술을 찾고, 친구를 찾고, 여느 즐거움을 찾는데, 말씀이 들어가 본적이 있는 영혼들은 말씀이 살아서 올라온다. 평상시에는 몰랐는데, 어두워지면 보이는 작은 집안에 불빛들이라던지, 느끼지 못했는데, 조용해지면 들리는 초침소리처럼, 어두워지면 더 영혼을 두드리는것이 말씀이다. 먹어놓은 말씀이 많을수록 그 고난을 이겨낼 근육도 강해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말씀은 의지가 없어도 먹게되는 음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배고픔 처럼 몸이 느끼지 못하고 영만이 느낀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는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라는 것은 어떤 것의 가치나 뜻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더 나은 가치를 위해 현재 취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 배우려는 자세가 이래야 한다. 성경을 펴서 읽을 때의 우리의 자세는, 내가 이 읽음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배움을 얻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의지는 완전히 다른 성경읽기가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아이가 그냥 학습에 의해 달달 외워서 들려줘도 감동이 될만큼 엄청난 힘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영으로, 의지로, 말씀으로 나가간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 강력한 말씀으로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의지를 가지고 지혜를 얻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복록을 누리는 의인의 삶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린다했다. 입에서 열매맺는 말들이 나오는 방법. 잠언에서 가르치는 이 방법은 간단하다. 열릴 데는 열려야 되고, 닫힐 데는 닫혀야 한다. 귀는 열고, 입은 닫아라. 그런데 악인은 귀는 막고, 입은 연다. 이것이 제어가 되어야 의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단 우리는 귀가 열려야 한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귀를 열고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귀를 열어 하늘의 것들이 내 안에 쌓이고 입을 열 때, 내 생각이 아닌, 하늘의 지혜가 나오게 될 때에, 우리는 오늘 본문이 말하는 열매맺는 입술들이 될 줄로 믿는다. 말씀을 펴는 것이, 궁금하고, 오늘은 어떤 말씀을 해 주실지 기대가되는 경험을 한 번 쯤 해보셨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현재의 내 머리와 몸이 원하는 가치를 잠시 내려놓고, 그 가치를 택하는 의지를 갖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거룩한 의지를 통해 지혜를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이삭은 순순히 제단위로 올라갔다. 그 뿐인가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 순종의 열매를 맺으신 분이시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신다는 고백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이러한 순종은 상대에 대한 온전한 인정과 배움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의 의도적인 의지가 반영되는 행동이다. 같은 교실에 앉아서 공부하지만, 어떤 학생은 평생 기억에 남는 가르침을 그 순간에 받고 있는가하면, 어떤 학생은 사경을 해매고 있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에, 듣고, 읽고 할 때에, 내가 가진 의지만큼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내가 성경을 펴서 지금 읽는 이 말씀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크기만큼 우리는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은 순종으로 의로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한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준다. 오늘 본문에서는 원하는 것들을 허락해 주시는 복을 누린다고 말하고, 반대의 경우 원하지 않는 것들을 당하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의지가 이렇게 중요하다. 우리가 티비를 볼 때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정돈하고 광고를 보고 있는 마음 정도만 우리가 말씀을 향해 의지를 갖어도 충분할 것 같다. 의지를 가지고 배움을 얻고, 훈계를 받아들임으로써, 복록을 누리고, 원하는 것들을 얻는 귀한 삶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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