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순리

서론

  1. 벨릭스 총독이 가이사랴에 발생한 이방인들과 유대인 사이에 유혈 사태로 인해 해임되고, 베스도가 자리를 이어 받았다. 
  2. 정신 없는 정치적 변화의 시기에 유대인들을 이 틈을 노려 바울을 다시 한 번 해하려는 계획을 세워 베스도에게 접근하게 된다. 
  3. 유대 지도자들이 얼마나 정치세력에 가까웠는지는 그들이 높은 자들의 주변에 지속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4. 오늘은 유대지도자들과 바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신앙, 순리를 따르는 신앙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한다.

본론

베스도와 유대인들이 추구하는 호의

  1. 먼저 우리가 “호의”라는 단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 전 장 24장의 끝절부터 오늘 본문 12절까지 “호의”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한다.
  3. 해임당하는 위치에서 전 총독 벨릭스는 유대인들이 로마로 올라와서 고발하는 것을 두려워해, 마지막 할 수 있는 호의를 베푸는데, 그것이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떠나가는 것이었다. 
  4. 그렇게 벨릭스가 떠나가고 베스도가 부임해서 3일만에 지역에 대해 알기 위해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5. 그 곳에서 유대지도자들이 바울을 고소하면서, 자신들에게 “호의” 베풀어 줄 것을 청하는데, 바울을 가이사랴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중간에 해하려는 음모였다. 
  6. 유대지도자들은 베스도가 처음 부임해서 자신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정도 꽤뚤어보고 그런 “호의”를 부탁한 것이다. 
  7.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8일에서 10일 머물면서, 실정을 살피고 다시 가이사랴로 내려간다. 유대지도자들은 따라 내려와 바울을 그곳에서 고발하는데, 그 재판을 통해 역시, 2년 전에 벨릭스와의 재판에서 그랬듯이 쓸만한 증거들을 보이지 못하고, 설득력도 없는 고로 바울을 능히 이기지 못한다.
  8. 그런데 문제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호의와 같은 단어이다) 바울에게 살짝 떠본다. 저들의 바램처럼 예루살렘에 너가 올라가기를 원하느냐?
  9. 이 “호의”라는 것이 지금 정치와 종교가 만나는 이 장소에서 불순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본다. 이 호의 라고 하는 영어에서 favor 라고 하는 이 단어는 보통 하나님의 은총을 일컫을 때 사용한다. 
  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에게 이 favor 를 베푸신다. 특히 믿음 있는 자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11. 그런데 유대지도자들을 보라. 누구보다 성전에 거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정의를 거스르고 사람인 베스도의 호의를 구할 뿐이다.
  12.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야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할 줄로 믿는다.

바울이 택한 순리

  1. 바울은 가이사랴에 구류된지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사회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벨릭스도 물러났다. 석방되었어야 마땅한 상황이고, 2년 만에 다시 새로운 총독과 새로운 재판을 가졌는데, 역시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했다.
  2. 그런데, 베스도가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하는 것을 본 바울은 더 이상 유대지도자들의 영향력이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자유의 신분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3. 바울은 베스도의 함정과도 같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겠느냐”는 질문에 “재판을 내가 당연히 받겠고, 죄를 지었으면 죄값도 받겠으나, 나는 예루살렘이 아닌 로마에가서 재판을 받겠다” 라고 상소하게 된다. 
  4. 사실 바울이 재판을 받는 문제는 로마제국 입장에서 볼 때는 로마에까지 상소할만한 중대 범죄는 아니다. 변방 유난한 한 나라의 종교분쟁일 뿐이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왕에게 재판을 받는 것이 피고로써 더 부담이 될텐데도 그 길을 선택한다.
  5. 그렇지만 어찌보면 바울은 로마시민으로써 찾아야할 권리를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나 상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주고 받는 호의 속에서 희생되지 않고, 조금은 이상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로마에갈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 방법을 택했다.
  6. 바울을 선택과 행동을 보면, 유대지도자들의 그 것과는 참 많이 다름을 본다. 벨릭스는 돈을 원했었다. 사실 사람들과 단절시키지 않았던 구류 방침상, 바울이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원한다면, 사방의 교회에 기별해 돈을 써 풀려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벨릭스라면 충분히 석방시켜주었을 것이다.
  7.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에게 호의를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을 바랬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8. 사도행전 5:29 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며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9. 하나님이 명하신 일 “로마에 가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벨릭스와 베스도에게 잘 보이는 것 보다 마땅한 일임을 바울은 알았다.
  10.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의 은총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순리의 하나님

  1. 바울의 선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보통 순리에 따르는 일이다. 정도를 가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의 법칙과 규칙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것들에 맞게 모든 것들을 운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누구보다 질서의 전문가이시다.
  3. 하나님이 인간 세계에 질서 없이 개입하신다고 생각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하나 행하시기 위해서도, 한 사람을 부르시고, 응답을 기다려 주시고, 행함을 보일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기적을 풀어놓으셨다. 
  4. 심지어 예언이나 방언을 함에 있어서도 질서있고, 품위 있게 하라 바울을 통해 가르치셨다.
  5. 그것들 뿐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그냥 개입하셔서 구하신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이 되어 죽으시기 까지 질서있게 행하셨다. 인간 세계의 순리에 맞게 행하셨다.
  6.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7.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그 정신을 망각할 때가 있는 것같다. 때로는 너무 목표지향적으로 살아서인지, 내가 맡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과정 가운데 정의와 의는 저버리고, 성공적인 결과만을 위해 애쓸 때가 참 많다. 
  8.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아름답고 숭고한 결과를 위해, 과정 또한 순리에 맞게 품위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피해를 보더라도 합당한 과정을 통과할 줄 아는 신앙인들이 되어야할 줄로 믿는다. 

결론

  1.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호의에 의존해 살아가지 않는다. 물론 호의는 인간관계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궁극적인 호의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일 것이다. 
  2. 하나님의 은총은 인간에게 호의를 얻는 것처럼 잘보이는 것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을 증명하는 나의 생활,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 따른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질서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예수님과 바울이 순리대로 살아간 것처럼 합당한 과정을 통해 아름답고 숭고한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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