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징조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예레미야 10:14

서론

  1. 사람들은 예로부터 징조라는 것을 믿어왔다. 달무리를 보며 비가 올 것을 예측하기도 하기도 하고, 까치가 찾아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도 하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첫 손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2. 성경에서도 많은 징조들이 언급된다. 가장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별을 보고 그 징조를 쫓아 예루살렘으로 온 동방박사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3. 이런 징조들이 우리의 삶 속 여기 저기 묻어져 있는 것은, 사람의 화복을 주장하는 어떤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은연 중에 인지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4. 예레미야 10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지 말라”
  5. 오늘은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또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는데, 정작 두려워해야할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본론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하늘의 징조

  1.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예언한다. 2에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2. 이방 여러 나라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는데,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3. 당시 고대시대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했다. 해도 달도 구름도 바람도 다 신이거나 신이 관장하는 매개체들이었다. 
  4. 그렇다고 했을 때에, 매일 다르게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특별한 “징조”로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5. 태풍이나 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신이 노했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신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하게 된다.
  6.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생활 다반사다. 일상이라고 보면 된다. 
  7. 우리도 다를 것 같은가? 우리의 우상은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재물을 섬기고, 행복을 섬기고, 나 자신을 섬긴다. 방금 나열한 것들은 나쁜 것들이 분명히 아니다. 
  8. 그러나 무엇이든지 하나님 위에 올라가게 되면 우상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징조들 두려워하는가?
  9. 재물의 유무에 따라, 지금 행복한가 안 행복한가, 나 자신을 보며 왜 사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면서 징조를 삼고, 두려워한다.
  10. 우리는 그런것들을 향한 두려움을 걷어내야 할 줄로 믿는다

진짜 화복을 주는 분을 바라봐야 한다

  1.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징조의 원인인 수 많은 신들은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꾸며만든 것에 불구하다.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그것들은 너희들에게 절대로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
  2. 이 화와 복이 얼마나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 관계에서 중요한 두 단어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3. 하나님이 율법을 수여하시면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너희가 이 명령을 순종하고 잘 따른다면 복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4.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그 화복에 대한 약속은 잊은채, 전혀 의미 없는 우상들을 둘러싼 징조들에 목을 매고 있다. 
  5. 왜? 왜그렇다고 생각하시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상들은 그들의 실생활에서 매우 밀접하게 접하기 때문이다. 
  6. 자연이나 동물들은 매일 눈으로 보고 그것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삶이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7. 그렇다면, 우리가 자꾸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도 분명해 진다.
  8. 우리가 살면서 우리 삶에 너무나도 가까이 맞닿아 있는 것들, 삶에 얽혀 있는 것들을 하나님 보다 더 신경쓰게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9. 당장 해결해야 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우리는 돈이 두렵다. 당연한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다시 하신다면, 이 돈에 대해 분명 직설적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10.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두려움들을 해결방법은 하나님이 보여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11.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우리는 못 본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 
  12.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바라며 예배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율법이 아니다. 수요 예배 안 나오는 것이 죄가 절대 아니다. 
  13. 그런데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지 않으면 그 분을 점점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보게된다.
  14. 그러면 우리는 죄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15. 주 얼굴 바라며 경배드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16. 그래서 진짜 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신경쓰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보라

  1. 예레미야가 14에 오늘 본문을 선포한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영어에서는 어리석다를 센스가 없다고 말한다. 센스가 무엇인가? 감각이 없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일어날려고 하는지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2. 우상을 만드는 은장이들이 자신이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되려 수치를 당하는데, 그걸 감지를 못한다.
  3. 이어서 “우상은 거짓 것”이요 라고 했는데, 우상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을 갖는 단어다. 여기서는 형상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는 형상.
  4. 사람이 만든, 되려 수치를 불러오는 우상은 “거짓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눈을 속인다. 
  5. 은장이들만 우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 
  6. 내 안에 차곡차곡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들, 쌓여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지식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커리어일 수도 있고, 욕심일 수도 있고, 다양하다.
  7. 그런 그런 것들은 다분히 거짓 형상을 우리에게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8. 내 안에 쌓인 경험과 감정과 지식들이, 많은 경우에 잘못된 나의 관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왜곡하기 한다. 그리고 낭패를 보기도 하고 은장이들처럼 수치를 당하기도 한다.
  9. 그렇다면 우리가 거짓된 형상이 아닌 올바른 형상들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 출발을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10. 16,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11.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먼저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수치를 당하고 망하지 아니한다. 왜? 우리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니.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의 지파라. 
  12.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 때에,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거짓된 형상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살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결론

  1. 우리는 어려가지 징조들을 인지하고 있고, 크지는 않더라도 신경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가장 큰 징조는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든 징조다
  2. 은장색들이 나무와 금속들을 가지고 신을 만들어 낸 뒤, 그 신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신 적도 없는 징조들을 만들어 내고, 살면서 하나님 보다 그것들을 더 두려워한다.
  3.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4. 때로는 건강을, 때로는 재물을, 때로는 행복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수 있다. 
  5. 그러나, 10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 하신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6. 우리는 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만 바라봐야하는 줄로 믿는다. 우리의 상급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징조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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