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예레미야 10:14
서론
- 사람들은 예로부터 징조라는 것을 믿어왔다. 달무리를 보며 비가 올 것을 예측하기도 하기도 하고, 까치가 찾아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도 하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첫 손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 성경에서도 많은 징조들이 언급된다. 가장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별을 보고 그 징조를 쫓아 예루살렘으로 온 동방박사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 이런 징조들이 우리의 삶 속 여기 저기 묻어져 있는 것은, 사람의 화복을 주장하는 어떤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은연 중에 인지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 예레미야 10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지 말라”
- 오늘은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또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는데, 정작 두려워해야할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본론
이방인들이 두려워하는 하늘의 징조
-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예언한다. 2절에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 이방 여러 나라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는데,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 당시 고대시대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했다. 해도 달도 구름도 바람도 다 신이거나 신이 관장하는 매개체들이었다.
- 그렇다고 했을 때에, 매일 다르게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특별한 “징조”로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 태풍이나 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신이 노했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신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하게 된다.
-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에게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 생활 다반사다. 일상이라고 보면 된다.
- 우리도 다를 것 같은가? 우리의 우상은 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오히려 재물을 섬기고, 행복을 섬기고, 나 자신을 섬긴다. 방금 나열한 것들은 나쁜 것들이 분명히 아니다.
- 그러나 무엇이든지 하나님 위에 올라가게 되면 우상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징조들 두려워하는가?
- 재물의 유무에 따라, 지금 행복한가 안 행복한가, 나 자신을 보며 왜 사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면서 징조를 삼고, 두려워한다.
- 우리는 그런것들을 향한 두려움을 걷어내야 할 줄로 믿는다
진짜 화복을 주는 분을 바라봐야 한다
-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징조의 원인인 수 많은 신들은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꾸며만든 것에 불구하다.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그것들은 너희들에게 절대로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
- 이 화와 복이 얼마나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 관계에서 중요한 두 단어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 하나님이 율법을 수여하시면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너희가 이 명령을 순종하고 잘 따른다면 복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그 화복에 대한 약속은 잊은채, 전혀 의미 없는 우상들을 둘러싼 징조들에 목을 매고 있다.
- 왜? 왜그렇다고 생각하시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우상들은 그들의 실생활에서 매우 밀접하게 접하기 때문이다.
- 자연이나 동물들은 매일 눈으로 보고 그것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삶이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가 자꾸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도 분명해 진다.
- 우리가 살면서 우리 삶에 너무나도 가까이 맞닿아 있는 것들, 삶에 얽혀 있는 것들을 하나님 보다 더 신경쓰게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 당장 해결해야 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우리는 돈이 두렵다. 당연한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다시 하신다면, 이 돈에 대해 분명 직설적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두려움들을 해결방법은 하나님이 보여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 안 보이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우리는 못 본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존재한다.
-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바라며 예배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율법이 아니다. 수요 예배 안 나오는 것이 죄가 절대 아니다.
- 그런데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지 않으면 그 분을 점점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보게된다.
- 그러면 우리는 죄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 주 얼굴 바라며 경배드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 그래서 진짜 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신경쓰게 되시기를 축원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보라
- 예레미야가 14절에 오늘 본문을 선포한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영어에서는 어리석다를 센스가 없다고 말한다. 센스가 무엇인가? 감각이 없는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일어날려고 하는지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 우상을 만드는 은장이들이 자신이 만든 신상으로 말미암아 되려 수치를 당하는데, 그걸 감지를 못한다.
- 이어서 “우상은 거짓 것”이요 라고 했는데, 우상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뜻을 갖는 단어다. 여기서는 형상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는 형상.
- 사람이 만든, 되려 수치를 불러오는 우상은 “거짓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눈을 속인다.
- 은장이들만 우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
- 내 안에 차곡차곡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들, 쌓여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지식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커리어일 수도 있고, 욕심일 수도 있고, 다양하다.
- 그런 그런 것들은 다분히 거짓 형상을 우리에게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
- 내 안에 쌓인 경험과 감정과 지식들이, 많은 경우에 잘못된 나의 관점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왜곡하기 한다. 그리고 낭패를 보기도 하고 은장이들처럼 수치를 당하기도 한다.
- 그렇다면 우리가 거짓된 형상이 아닌 올바른 형상들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 출발을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 16절,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먼저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수치를 당하고 망하지 아니한다. 왜? 우리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니. 우리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의 지파라.
-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 때에,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거짓된 형상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살아가게 될 줄로 믿는다.
결론
- 우리는 어려가지 징조들을 인지하고 있고, 크지는 않더라도 신경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가장 큰 징조는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든 징조다
- 은장색들이 나무와 금속들을 가지고 신을 만들어 낸 뒤, 그 신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신 적도 없는 징조들을 만들어 내고, 살면서 하나님 보다 그것들을 더 두려워한다.
-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 때로는 건강을, 때로는 재물을, 때로는 행복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수 있다.
- 그러나, 10절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 하신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우리는 참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만 바라봐야하는 줄로 믿는다. 우리의 상급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징조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