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커미션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상거래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고, 그 분야에서 사용되는 것을 가장 익숙하게 알고 있다. 판매나 업무를 위탁하고 일정 수수료 수익을 보장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일컫는다.
- 이 커미션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com 과 mittere 두 단어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는데, com 은 같이, 함께 라는 뜻이고, mittere는 보낸다는 뜻을 가진다. 무언가를 주어서 그것과 함께 보낸다는 뜻으로 위탁 혹은 위임이라는 본 뜻을 갖는다.
- 오늘 바울이 커미션을 받는다. 사도행전에는 총 세 번의 바울의 회심이 기록되었는데, 오늘 그 세 번째 회심을 아그립바와 베스도 앞에서 간증한다.
- 이 간증 가운데 바울은 예수님이 명하신 것에 대해 전의 두 간증보다 더 자세하게 전한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명하신 것, 즉 위탁하신 것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한다. 오늘은 바울이 받은 그 위대한 커미션에 대해서 나누어 보려고 한다.
본론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 바울은 예루살렘의 교회들을 핍박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메섹에 가서도 교회들을 핍박하고자 한다. 12절의 말씀을 보자,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 바울은 대제사장들에게 커미션을 받았다. 대제사장은 한 명인데, 원로들을 포함해 대제사장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다.
- 다메섹에 다다를 때 되어 하늘에서 해 보다 밝은 빛이 비추고 주님이 히브리 말, 즉 아람어로 사울아 사울아 부르신다. 그러시고는 “왜 나를 박해하는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말씀하신다.”
- 당시 가시채라는 것은 농부가 소를 몰면서 뾰족한 막대로 몰 때 사용했는데, 짐승들이 처음에는 그게 싫어서 한 번 뒷발질을 해본다고 한다. 그러고는 아파서 다시는 하지 않는데, 그 당시에 문학에서 흔히 의미없는 객기를 표현할 때 사용한 관용표현이다.
- 주님께서는 자신이 “예수” 이심을 밝히시고나서 바울에게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라고 말씀하신다. 전에 한 번 언급 해드린 내용인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과 그에 따른 약속된 복을 주실 때에, “일어나라, 서라” 라는 명을 하신다.
- 주님은 바울에게 새로운 커미션을 주시려고 하고 있다. 대제사장들에게 받은 커미션을 들고 다메섹으로 향하던 바울에게, 그 커미션은 의미 없는 것이다. 내가 진짜 커미션을 줄게. 일어나라. 받아라 명하신다.
- 우리도 바울과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세상 속에서 가족과 학교와 직업 안에서 주어진 커미션을 가지고만 살아가던 우리들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물에 들어가 그것들을 죽이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커미션을 명하셨다. 우리가 이제 전혀 새로운 커미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종으로의 부르심
- 그러나 커미션을 받으면, 좀 멋있는 위임이면 좋으련만, 바울이 받은 커미션은 “종”이 되는 것이다.
- 아니,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께 받는 커미션이 종이라니, 얼마나 초라하고 허무한가. 그러나 우리는 이사야서의 42장의 예언으로부터 예수님께서 “종”의 커미션을 하나님께로 부터 받으셔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 예수님은 이 땅에 종의 커미션을 받고 오셔서 예언을 성취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도들에게 커미션을 주시고, 세상으로 보내셨다.
-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바울을 부르시고 일어나 종의 커미션을 받아, 내가 이 땅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우리가 바울을 필두로 시작된 이 이방인을 향한 커미션을 통해 동일하게 커미션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커미션을 가지고 해야할 일은 자명하다.
- 첫째, 우리는 종이다. 종은 충성하고 성실하게 맡은 바 최선을 다 해야한다.
- 둘째, 우리는 종의 커미션을 신실하게 담당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아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 해 나가야한다.
- 종의 부르심, 종으로 받은 커미션을 감당하실 수 있기를 축원한다.
종에게 위탁된 커미션
- 그렇다면 예수님이 종으로서 하신 사역이 정확히 무엇인지 짚어 보아야겠다.
- 이사야 42장을 계속해서 읽으면 명확히 깨닫게 된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이사야 42:6-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 예수님은 이방의 빛으로서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시고, 갇힌 자를 해방시키시고,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바울에게도 동일한 커미션을 주셨다. 계속하라고.
- 우리, 예수님의 종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는 커미션을 위탁받을 줄로 믿는다.
커미션이 주는 커미션
- 우리가 위임 받은 커미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이 위대한 주님의 커미션에는 그에 상응하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수수료로서의 커미션도 분명 존재한다.
-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항상 그에 상응하는 복을 명하시고, 그 약속은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다.
- 오늘 본문 18절에서 주님이 이방인들에게 주시겠다히신 것이 무엇들인가?
- 첫째, 죄 사함을 얻는다.
- 둘째, 거룩하게 된다.
- 셋째,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된다.
-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거룩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바울을 커미션하실 때 말씀하신 이 두가지, 죄사함과 성화가 서신서를 통해 나타나는 바울의 가르침의 큰 축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누리게 될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업을 얻게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종의 커미션을 신실하게 감당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낮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과 함께 영원히 그 나라의 기업을 취하게 될 줄로 믿는다.
결론
- 예수님은 사울을 부르셨다. 그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이 성취하신 예언을 위임하여 그 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하심이었다.
- 이 커미션은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고, 대대로 이어져 오다가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우리는 예수님의 위대한 예언의 성취를 커미션 받은 자들이다.
- 우리는 세상에서 못 보는 자들을 보게하고, 어둠 가운데 앉아 있는 자들을 빛으로 인도하고, 사탄의 권세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하는 커미션을 위임 받을 줄로 믿는다.
- 하나님의 용서함과 거룩하게 하심을 전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기업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