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사도행전 4:13-21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성전에서 40여 년을 걷지 못하던 사람을 걷게한 기적에 대한 소문은 말할 것도 없이 예루살렘 전역으로 하루만에 다 퍼져나갔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고 지도자들도 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치 정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다. 언론을 장악하고 판을짜서 덮는 드라마의 한 장면과도 같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한 것을 보면, 상당히 해악적인 요소를 통해 유대 지도자들을 조롱하는 것 같이도 느껴진다. 제자들과 백성들은 더 기적을 보고싶고, 더 알리고 싶고, 더 소문내고 싶고, 더 인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만 반대다. 감추고 싶다.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만 말했다면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분명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이런 일들을 했다고 증언했다.
우리는 무슨 억지를 부리나
누가는 우리에게 동일한 조롱의 메세지를 날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난게 분명하다. 우리도 그런 기적이 더 보고싶은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가?
예수 이름으로 삶 가운데 기적을 보려면, 나에게 돌아오는 이로움들을 포기해야만 하는데?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것 다 안다. 동네방네 다 소문 낫고, 교회마다 다 알고 있고, 교인들도 다 알고, 아동부 애기들도 다 안다.
그런데 내 자아는 부인하려한다. 나의 입술과 머리가 아닌 삶으로 인정해야할 줄로 믿는다.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더 나타나기를 그런 하루를 살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