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5
-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서론
- 바나바와 갈라선 바울은 시리아를 거쳐 북쪽으로 전진해 자신의 고향인 길리기아의 다소를 걸쳐 서쪽으로 나아간다. 험한 산악지역을 넘어 자신이 1차 전도에서 거쳤던 더베를 지나, 죽음에 이를 뻔했던 루스드라에까지 도착한다.
- 그곳에서 바울은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나게 된다. 잘 아시다시피, 이 디모데는 앞으로 바울의 사역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 만약 사도행전이 소설책이라면, 주인공이 중요한 파트너를 얻는 흥분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유비가 제갈량을 얻은 것과 같다. 삼고초려는 없었지만, 목숨을 바친 바울의 삶이 그곳에 열매를 맺을 것을 생각하면, 비견하고도 남는다.
본론
디모데와 실라의 겸손
디모데
- 2절을 보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라고 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주변 교회들끼리 왕래나 교류가 있을만큼 활발히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었고, 디모데가 그 주변 도시들에서도 특별히 칭찬받을만큼 탁월한 신앙인이었다는 점이다.
- 디모데에게는 이방인 아버지와 “유니게” 라는 유대인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로이스”라는 유대인 외할머니가 있었다.
-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구약성경을 접했고,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할 때에, 그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 헬라어를 보게되면, 아버지를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아버지가 이미 죽었음을 시사하는 동사형태가 사용되었는데, 그래서 외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 그리고 고대 랍비들의 문헌에는 엄마가 유대인일 경우 합법적으로 유대인으로 받아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으로 살 수 있지만, “할례를 받지 않은 것” 이 유대인으로 인정 받는데 남은 유일한 문제다. 바울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방금 15장 까지만해도 그렇게 열심을 가지고, 할례가 필요 없다고 논쟁을 벌여 예루살렘까지 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왔는데,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이?
- 말씀드렸다시피, 이 일 전에 바울이 이미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는데, 갈라디아서에서도 역시 할례에 메여서는 안됨을 말하고 있다.
- 우리가 하나 헷갈리지 않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디모데는 “이방인” 이 아니다.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유대인”이다. 그리고 그가 유대인으로써 유대인들을 전도할 때에, 문제가 없기를 바랬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다.
- 이 대목에서 디모데가 얼마나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가를 배우게 된다.
- 디모데는 유력한 청년이다. 여러 도시들의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이 이다. 뭘해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를 때와 같이, 바울이 예수님도 아닌데, 그의 부름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그리고 바울이 난데 없이, 할례를 받자고 한다. 그 시절이 지금처럼 마취가 있고, 예리한 수술도구가 있었던 시절도 아닌데, 다 큰 장성한 이가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겠는가? 이건 그를 위해 피흘린 예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디모데는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다.
실라
- 텍스트 상에는 지금 드러나지 않으나, 실라가 바울과 함께 하고 있다.
- 우리는 항상 “바울과 실라” 로 기억하지 “실라와 바울” 로 기억하지 않는다.
- 그런데 사실 실라가 어떤 사람인줄 아는가?
-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장로다. 지금으로 치면, 한 교회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다. 사실 바울보다 굳이 따지자면, 더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 그런 이가 안디옥에 특사로 왔다가, 바울이 그가 로마시민인것을 알고, 전도에 유용할 것 같아서, 같이 가기를 택하여 청하니, 그 고생길을 마다 않고, 전도길을 나선다.
- 학자들이 평균치를 낸 것을 보면, 하루에 바울이 평균 30km 이상을 걸어야만 사도행전의 시간 스케쥴이 맞아 떨어진다.
- 그것도 아스팔트길인가? 산넘고 물넘어 걸어야 한다.
- 실라는 그길을 선택했다. 설마 바울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속여서 떠났겠는가? 또 그것뿐인가. 감옥에도 같이 갖히고 고생고생한다.
- 실라는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사람이다.
바울의 전략적인 전도
유대인
-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바울은 전도를 무작정 떠나지 않았다. 1차 전도 때보다 2차 전도 때 바울은 같이 동행하는 이들을 신중하게 뽑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1차 전도에서 배운 경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 디모데는 유대인이었고, 그가 앞으로 유대인을 전도하는데 유용하고, 도움이 될 것을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할례를 받게 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얻기위한 전략을 취했다.
- 사도행전을 통해 보듯이, 바울은 항상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전도를 시작했기 때문에, 디모데가 전도에 분명 도움이 될거라고 여기고 이 전략을 택했다.
이방인
- 실라는 로마시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다.
- 시민권은 각지를 다니며 전도하기에 정말 좋은 이점이었다.
- 그리고 바울이 공회의 서신을 들고, 네가지 최소한 지켜야할 것들을 이방인 교회에 전할 때에,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실라의 존재는 그 서신의 권위를 확실히 올려주었다.
- 바울은 우직한 사람이고, 고집이 있고, 신념이 강한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간이나 쓸개나 다 꺼내서라도 얻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모든 전략을 짜고 있다.
- 불변하는 복음말고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이 전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 그는 엘리트이고, 현시대 학자들이 인정하기는 그는 천재다. 그가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이 전도를 행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십자가와 복음 앞에서 겸손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낮추신 예수님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 예수님은 어떠신가?
-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하나님은 우리 한 영혼을 살리시려고, 자기를 비우사 십자가 와 복음 앞에 겸손하셨다.
낮아지라 말씀하심
-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가르치셨나, “낮아지라, 겸손하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다.
복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삶
변질시키지 않는 것
-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했던 이 모든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야 마땅할 터인데,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겸손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 첫째로는,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는 것이다.
- 바울이 아무리 전략적으로 전도를 행했다 한들, 그가 목숨걸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복음이다. 할례만 인정했어도 매질 안당하고 감옥에 안갖혔을 것을.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렇게 고생을 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어떻게 살면 복음이 나 때문에 변질되겠는가? 나의 삶을 통해 차별 없으신,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려진다면 복음을 변질하는 것일 것이다.
- 말씀대로 살 때에, 복음 앞에 겸손하게 사는 것임을 믿는다.
전해지게 하는 것
- 둘째로는, 복음이 전해지게 하는 것이다.
-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 복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게 하기 위해 가진 역량 스펙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을 택했다.
- 시민권을 숨기고 감옥에 들어갔고, 그 결과, 간수들을 구원하는가 하면, 우메자처럼 우메자를 얻고, 지혜자처럼 지혜자를 얻었다.
- 바울은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했다.
- 우리도 고민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다. 내가 한 영혼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의 입장에서 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저부터도 반성을 해야하겠다.
-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신앙인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결론
- 하나님은 누구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낮추사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 또한 우리가 바울의 사역을 통해 보는 것은 그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취하고, 기회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 또한 살아갈 때에, 어떻게 나의 삶을 한 영혼을 위해 살아야할지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실라는 이미 예루살렘의 유력한 지도자였고, 디모데 또한 모든 이에게 칭찬 받는 유력한 청년이었다.
-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을 취했다.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고, 디모데는 심지어 그 장성한 나이에 할례를 받았다.
- 우리는 복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성육신 하시기 까지 자신을 우리에게 맞추신 하나님의 열정을 내 삶에 심어,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우리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