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신앙
2019년 2월 14일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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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1-5

예배일시

2019년 2월 13일

사도행전 16:1-5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서론

  1. 바나바와 갈라선 바울은 시리아를 거쳐 북쪽으로 전진해 자신의 고향인 길리기아의 다소를 걸쳐 서쪽으로 나아간다. 험한 산악지역을 넘어 자신이 1차 전도에서 거쳤던 더베를 지나, 죽음에 이를 뻔했던 루스드라에까지 도착한다.
  2. 그곳에서 바울은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나게 된다. 잘 아시다시피, 이 디모데는 앞으로 바울의 사역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 
  3. 만약 사도행전이 소설책이라면, 주인공이 중요한 파트너를 얻는 흥분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유비가 제갈량을 얻은 것과 같다. 삼고초려는 없었지만, 목숨을 바친 바울의 삶이 그곳에 열매를 맺을 것을 생각하면, 비견하고도 남는다. 

본론

디모데와 실라의 겸손

디모데

  1. 2절을 보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라고 했다. 이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주변 교회들끼리 왕래나 교류가 있을만큼 활발히 기독교가 전파되고 있었고, 디모데가 그 주변 도시들에서도 특별히 칭찬받을만큼 탁월한 신앙인이었다는 점이다.
  2. 디모데에게는 이방인 아버지와 “유니게” 라는 유대인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로이스”라는 유대인 외할머니가 있었다. 
  3. 자연스럽게 성장하면서, 구약성경을 접했고,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할 때에, 그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4. 헬라어를 보게되면, 아버지를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아버지가 이미 죽었음을 시사하는 동사형태가 사용되었는데, 그래서 외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5. 그리고 고대 랍비들의 문헌에는 엄마가 유대인일 경우 합법적으로 유대인으로 받아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으로 살 수 있지만, “할례를 받지 않은 것” 이 유대인으로 인정 받는데 남은 유일한 문제다. 바울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7. 그런데 이상하지 않는가? 방금 15장 까지만해도 그렇게 열심을 가지고, 할례가 필요 없다고 논쟁을 벌여 예루살렘까지 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왔는데,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이?
  8. 말씀드렸다시피, 이 일 전에 바울이 이미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는데, 갈라디아서에서도 역시 할례에 메여서는 안됨을 말하고 있다. 
  9. 우리가 하나 헷갈리지 않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디모데는 “이방인” 이 아니다.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유대인”이다. 그리고 그가 유대인으로써 유대인들을 전도할 때에, 문제가 없기를 바랬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다. 
  10. 이 대목에서 디모데가 얼마나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가를 배우게 된다. 
  11. 디모데는 유력한 청년이다. 여러 도시들의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이 이다. 뭘해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를 때와 같이, 바울이 예수님도 아닌데, 그의 부름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2. 그리고 바울이 난데 없이, 할례를 받자고 한다. 그 시절이 지금처럼 마취가 있고, 예리한 수술도구가 있었던 시절도 아닌데, 다 큰 장성한 이가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겠는가? 이건 그를 위해 피흘린 예수 앞에 겸손히 자신을 드리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디모데는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사람이었다.

실라

  1. 텍스트 상에는 지금 드러나지 않으나, 실라가 바울과 함께 하고 있다. 
  2. 우리는 항상 “바울과 실라” 로 기억하지 “실라와 바울” 로 기억하지 않는다. 
  3. 그런데 사실 실라가 어떤 사람인줄 아는가? 
  4.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장로다. 지금으로 치면, 한 교회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이다. 사실 바울보다 굳이 따지자면, 더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5. 그런 이가 안디옥에 특사로 왔다가, 바울이 그가 로마시민인것을 알고, 전도에 유용할 것 같아서, 같이 가기를 택하여 청하니, 그 고생길을 마다 않고, 전도길을 나선다. 
  6. 학자들이 평균치를 낸 것을 보면, 하루에 바울이 평균 30km 이상을 걸어야만 사도행전의 시간 스케쥴이 맞아 떨어진다. 
  7. 그것도 아스팔트길인가? 산넘고 물넘어 걸어야 한다. 
  8. 실라는 그길을 선택했다. 설마 바울이 어떤 일이 펼쳐질지 속여서 떠났겠는가? 또 그것뿐인가. 감옥에도 같이 갖히고 고생고생한다. 
  9. 실라는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사람이다. 

바울의 전략적인 전도

유대인

  1. 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바울은 전도를 무작정 떠나지 않았다. 1차 전도 때보다 2차 전도 때 바울은 같이 동행하는 이들을 신중하게 뽑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 1차 전도에서 배운 경험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2. 디모데는 유대인이었고, 그가 앞으로 유대인을 전도하는데 유용하고, 도움이 될 것을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할례를 받게 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얻기위한 전략을 취했다.
  3. 사도행전을 통해 보듯이, 바울은 항상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전도를 시작했기 때문에, 디모데가 전도에 분명 도움이 될거라고 여기고 이 전략을 택했다.

이방인

  1. 실라는 로마시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다. 
  2. 시민권은 각지를 다니며 전도하기에 정말 좋은 이점이었다.
  3. 그리고 바울이 공회의 서신을 들고, 네가지 최소한 지켜야할 것들을 이방인 교회에 전할 때에,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실라의 존재는 그 서신의 권위를 확실히 올려주었다.
  • 바울은 우직한 사람이고, 고집이 있고, 신념이 강한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간이나 쓸개나 다 꺼내서라도 얻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모든 전략을 짜고 있다. 
  • 불변하는 복음말고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이 전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 그는 엘리트이고, 현시대 학자들이 인정하기는 그는 천재다. 그가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이 전도를 행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십자가와 복음 앞에서 겸손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낮추신 예수님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1. 예수님은 어떠신가? 
  2. 빌립보서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하나님은 우리 한 영혼을 살리시려고, 자기를 비우사 십자가 와 복음 앞에 겸손하셨다. 

낮아지라 말씀하심

  1.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가르치셨나, “낮아지라, 겸손하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다.

복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삶

변질시키지 않는 것

  1.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했던 이 모든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야 마땅할 터인데,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겸손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2. 첫째로는,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는 것이다. 
  3. 바울이 아무리 전략적으로 전도를 행했다 한들, 그가 목숨걸로 지키고자 했던 것은 복음이다. 할례만 인정했어도 매질 안당하고 감옥에 안갖혔을 것을. 차별 없으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렇게 고생을 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 
  5. 어떻게 살면 복음이 나 때문에 변질되겠는가? 나의 삶을 통해 차별 없으신,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려진다면 복음을 변질하는 것일 것이다. 
  6. 말씀대로 살 때에, 복음 앞에 겸손하게 사는 것임을 믿는다.

전해지게 하는 것

  1. 둘째로는, 복음이 전해지게 하는 것이다.
  2.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 복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게 하기 위해 가진 역량 스펙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을 택했다. 
  3. 시민권을 숨기고 감옥에 들어갔고, 그 결과, 간수들을 구원하는가 하면, 우메자처럼 우메자를 얻고, 지혜자처럼 지혜자를 얻었다. 
  4. 바울은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했다. 
  5. 우리도 고민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다. 내가 한 영혼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의 입장에서 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저부터도 반성을 해야하겠다. 
  6.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신앙인들 되시기를 축복한다.

결론

  1. 하나님은 누구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셔서, 자신을 낮추사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2. 또한 우리가 바울의 사역을 통해 보는 것은 그가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취하고, 기회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3. 또한 살아갈 때에, 어떻게 나의 삶을 한 영혼을 위해 살아야할지 고민해봐야할 것이다. 실라는 이미 예루살렘의 유력한 지도자였고, 디모데 또한 모든 이에게 칭찬 받는 유력한 청년이었다.
  4.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을 취했다.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키고, 디모데는 심지어 그 장성한 나이에 할례를 받았다. 
  5. 우리는 복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6. 성육신 하시기 까지 자신을 우리에게 맞추신 하나님의 열정을 내 삶에 심어, 십자가와 복음 앞에 겸손한 우리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