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의 책임감

서론

  1.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라는 도시에 이르게 된다
  2. 고린도는 그 당시에 매우 큰 도시였다.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로마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많은 인구들이 살고 있었다
  3. 동서로 오가는 무역선들이 통과하고, 그리스 남북을 연결하는 요지에 위치한 도시로써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풍부한 도시였다.
  4. 그리고 무엇보다 고린도에는 그리스로마 신 중에 사랑을 담당하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는데, 그 신전에는 1,000명이 넘는 창녀들이 있었고, 이러한 문화 때문에, 고대 문학에서는 고린도화 되다, 고린도 사람, 고린도 여자 등,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이를 때에 고린도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5. 이 도시는 그 만큼 중요하긴 하지만, 복음을 전하기에 쉽지 않은 도시였다. 

본론

이 땅에서의 부르심

로마에서 쫓겨난 유대인들

  1. 바울이 한참 사역을 할 때에, 로마 본토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글루우디오 황제의 자서전을 보면, 유대인들이 “크리스토스의 선동”에 반응해서 지속적인 소동을 일으킴으로 도시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2. 여기서 크리스토스는 예상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 일 전에도 디베리우스 황제 때도,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활동으로 추방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 번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이들과의 소동으로 쫒겨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3.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유럽의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다른 곳 다 재쳐두고, 로마, 즉 세계의 심장부를 향해 예수를 들고 달려간 복음 전파자들이 이미 있었다는 말이다. 
  4. 그곳에서 그들은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고 소동을 일으켜 결국 추방 당하게 된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1.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그 추방 때문에 오늘 고린도로 흘러 들어오게 되는데, 사업을 하고 있다보니, 큰 도시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2. 본문으로 보건데, 이들은 이미 기독교인들인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믿지 않는 이들이 믿게 되었을 때에, 보통 믿게 됨을 짚고 넘어간다. 
  3. 이미 로마에서 예수님에 대해 듣고 믿게된 이들을 만나 바울은 같이 동역을 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바울과 같은 생업을 가진 이들을 적절한 시기에 예배하셔서 바울의 사역을 도우시는 것을 볼 수가 있다. 
  4. 이러한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도우심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축원한다.

홀로 고린도에 있는 바울

  1. 바울은 지금 고린도 지역에 홀로 있다. 실라와 디모데는 마게도냐 지역에 남아 교회들을 돕고 살피고 있다.
  2.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에서 항상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서 자신의 뜻과는 상관 없이 그 지역들에서 떠나갔어야만 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 당시 마음이 정말 어려웠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3.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바울에게 아굴라 내외의 협력은 정말로 단비 같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다른 서신서에서들도 언급하며 평생 동역자로 인정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4.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도 이 같은 동역자들을 붙혀 주셔서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어딜가던지, 협력하게 하시기를 축원한다. 

랍비들의 직업관

  1. 바울은 랍비가 되기 위한 엘리트 코스를 밟던 사람이었다.
  2. 랍비들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랍비는 가르치는 것을 통해 돈을 벌 수 없었고, 자신 스스로 돈을 벌 수단을 가져야 한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바울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발달한 가죽 다루는 기술들을 습득했고, 그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바울의 책임감

  1.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바울은 지금 필요에 의해서 생업에 다시 뛰어든 것을 볼 수 있다. 단신으로 복음을 계속해서 전해야하는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3.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가 필요에 의해 소망을 쫓아가지 않고 반대로, 소망을 좇아 필요를 택했다는 점이다.
  4. 우리가 세상에서 복음을 살아내기 위해서 보내졌는데, 우리가 예수님이 명하신 삶을 살기 위해 필요를 택해야하지, 반대로 필요한 삶을 살기 위해 소망을 택해서는 안되겠다. 
  5. 하늘의 것들 때문에 필요를 선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하늘의 부르심

실라와 디모데의 합류

  1.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로 내려와 바울과 합류한다. 다른 서신서에서 볼 수 있 듯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의 교회들로부터 전도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왔다. 
  2. 5절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라고 해석했는데, 헬라어 원어로부터 두가지 해석이 가능한 문장인데, 사실 더 많은 번역서들이 “하나님 말씀 전하기에 전념했다” 라고 번역하고 있다. 
  3. 다시 말하면, 전도를 위해 생업을 같이 하다가, 실라와 디모데가 옴으로 인해서, 전도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마게도냐 교회들의 원조

  1. 마게도냐의 교회들은 바울이 당한 고난을 여전히 당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안그래도 제한된 외국 생활에, 자국민들인 유대인들에게도 외면당하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다.
  2.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과 새로운 지역에 복음의 문을 여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내어놓는 헌신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바울

  1. 그들의 헌신에 힘입어 바울도 다시 한번 이 땅에서의 부르심인 생업 뿐만 아니라, 하늘의 부르심인 복음 전파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2.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외 없이 주어진 부르심이 있다. 그것은 증인이 되는 일이다. 예수께서 구원자라는 것을 알리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이다. 
  3.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의 우리 삶의 “정도”이기에 어떤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승리를 미리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4. 바울은 다시 한번 유대인들에 정면으로 맞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라고 밝히 증거한다. 바울은 어려운 길을 애써 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책임감이다. 
  5. 제자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존재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제자라고 말할 때에는, 선생의 따라가는 것이 요구된다. 따라가지 않으면 제자라고할 수 없다. 
  6. 우리가 제자라는 존재,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책임감,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요구된다.
  7. 어려운 일 앞에 펼쳐질게 뻔하고, 어려울 것 뻔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승리를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8. 제자의 이름을 넘어 제자도의 정신을 삶에서 나타낼 수 있기를 축원한다. 

주님의 격려와 위로

대적 당하는 바울

  1.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밝히면 당연히 유대인들에게 대적당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큰 반대를 경험하고 바울은 회당에서 쫓겨난다. 옷을 털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 
  2. 이 말은 “나는 너희에 대해서는 책임감” 이 없다는 말이다. 
  3.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너희에게만큼은 그 일에서 이제 자유롭다는 말이다. 그의 마음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회당 바로 옆 가정에서 교회를 시작하는 바울 (그리스보 세례)

  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당의 지도자 중 한명인 그리스보의 마음을 여셔서 믿음을 주셨다. 이 사람은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유일하게 직접 세례를 준 두명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종교적 위치가 바울이 직접 세례를 줄만큼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2. 또 하나님은 디도라는 부유한 이를 얻게 해주셔서 그의 집에서 믿는 이들에 모일 수 있게 해 주신다. 
  3. 흥미로운 것은, 회당 바로 옆이라는 이 집의 위치다. 아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안식일마다 모이면서 마주치고, 논쟁하고,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4. 하지만, 회당 옆에 위치하면서, 아름답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어 많은 이들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을 것이다. 
  5.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열고 이끌어 가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6. 우리가 걷는 제자도는 우리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길이 아니다.
  7. 주님이 앞서 가시며 길을 여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바울을 격려하는 주님

  1. 도와주시는 것 이상으로 주님은 바울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 그의 꿈에 직접 나타나신다.
  2. 지금까지 바울이 당해 온 일들을 생각할 때에, 바울이 낙심될 수 있다. 그러면 바울은 다른 곳으로 또 옮겨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3. 그러나 고린도에는, 주님께서 꿈에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다. 
  4.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겠다고 보호하겠다고 말씀하신다.
  5. 주님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길 가운데 위로와 격려로 함께 하시는 줄로 믿는다. 

결론

  1.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을 불러 주신 자리에서 감당해야할 책임감을 신실하게 이행했다.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도로, 맡겨진 생업을 해야하는 일꾼으로 해야할 것들을 했다. 
  2. 물론 그 것들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바울이 그 일을 신실하게 감당해야만 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게 해주겠다,” “추수할 것이 많다” 라고 말씀하셨다.
  3.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실 때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감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4.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보내진 곳은 우리가 감당해야할 책임감을 수반한다. 우리는 그 책임감을 신실하게 감당해야하는 부르심이 있다.
  5.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격려와 위로를 하신다. “내가 함께 하겠다, 너를 보호하겠다, 취할 것이 그 곳에 많다”
  6.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부르심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모두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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