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주위에 머물자

창세기 21:14-18

  1.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2.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3.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4.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5.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두 번이나 만난 사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태어났다. 그런데 이삭 탄생에 대한 서술은 허무할 정도로 짧고 건조하다. 오히려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 더 집중되고 있다.

이삭의 출생으로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떠나가게 되는데, 광야와 같은 땅에서 죽음을 맞게되는 위기에 처한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도 이런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하갈에게 친히 살 길을 열어 주셨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다시 한번 하갈과 이스마엘을 구해 주신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한 인물에게 반복적으로 직접적으로 찾아오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 두 번이나 찾아오신 이유는 하갈이 특출나게 그럴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의 주변인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출처가 분명한 것이기에, 복이 흐르는 곳에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 곳은 분명히 예수님이시다. 오늘도 예수님으로부터 흐르는 그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큰 그림을 보자

하갈과 이스마엘이 큰 민족으로 성장하는 이 이야기는 롯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다. 큰 민족으로 켜져가기 위해서는 사실 펴지고 떨어져야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큰 그림을 봐야한다.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사라와 아브라함이 박하고 심하게 구는 이야기로 비쳐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지금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 계시는 과정이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이 이야기를 판단해야한다.

그 말을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든 하나님의 큰 그림 안으로 맞추어 넣어야 하겠다. 삶의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겠지만, 결국은 전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 거할 때에, 우리의 삶은 주님의 뜻을 이룰줄로 믿는다. 이 번 한 주간도 예수님으로부터 흐르는 복 안에서 그 큰 그림을 한 획 한 획 그려가시는 귀하고 값진 한 주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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