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되는 삶
2019년 2월 1일

“복” 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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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1-11

예배일시

2019년 2월 6일

사도행전 15:1-1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중에어떤믿는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은혜로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서론

  1.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파송교회인 안디옥교회로 돌아왔다. 
  2. 선교보고를 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그곳에서 머물렀다.
  3. 그러던 중, 예루살렘으로부터 믿는 자들이 찾아와서는 “할례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4. 이 일로 인해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몇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 이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를 원한다. 
  5. 15장의 내용은 이 사안에 대한 초대교회의 토론과 결정에 관한 내용이다.

본론

유대인들에게 할례란

15장의 배경은 초대교회가 고넬료와의 사건을 겪은지 이미 십여년의 세월이 지난 시점이다. 그런 놀라운 사건을 겪고, 기독교가 선교사를 보낼정도의 규모와 시스템을 갖춘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율법’ 과 ‘할례’에 대한 마찰이 있는 것을 보면, 기존 유대인들에게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보통 전설이나 영웅담은 그것을 강조하고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 지는데, 당시 할례에 대한 많은 전설들과 영웅담이 있을 정도로 할례에 대한 그들의 의식은 특별했다. (태어날 때부터 할례를 받고 태어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
할례는 이스라엘을 그 외의 세상으로부터 구분하는 척도

  •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은 선민으로써의 구분(거룩)이 아닌 세상의 본, 모델이 되는 빛으로써의 구분
  • 하지만 빛이 되어야 할 그들이 스스로 벽을 치고, 빛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민족들에게 돼려 영향을 받아 죄악들을 저질렀다.

할례가 그들에게 중요했던 또 다른 이유는, 할례가 그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할례를 “언약의 표징” 이라고 정하시고, 이 언약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세기 17:6-10
  • 이 언약은 “영원한” 것이고, 대대로 지키라 하셨기에,  이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명하신 “할례”를 지켜야만 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당연한 논리였다.
  • 영원하다고 했는데, 갑자기 바뀌는게 어디있는가?
  • 이러한 논리는 그들의 언약에 대한 오해에서 온다. 

성경의 언약과 복

  1. 유대인 기독교인들, 특히 예수님을 믿게된 바리세인들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원한 언약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받아들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2.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에게 그들이 죽은 것으로 치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눈에 살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 때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아담 때부터 동일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지켜야할 것을 명령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다고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 된 것인가?
  4.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세우시고 복을 주셨다. 
  5.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언약 이행에 실패할지라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불변하게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6. 노아의 후손들도 실패 했지만, 그 영원한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전해져, 이삭과 야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단지 인간 편에 요구하시는 명령만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7. 그 영원한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때에 와서 완전히 성취되는 첫 걸음을 디디게 되는데, 이 유대인들이 복의 근원을 할례 언약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8.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누리는 복은 태초부터 내려오는 번성과 증가의 복임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한다. 

복은 믿음으로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

  1. 이 할례 논쟁의 맹점은 위에서 다루었듯이 “복”에 대한 것이고, 그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에 대한 것이다.
  2. 당시에는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완전히 개종한 이들과 “고넬료”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두 부류의 예배자들이 있었다.
  3. 당시의 유대교인들의 구원과 복은 별도의 개념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는 없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4. 그런데, 바울이 이방인 전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 두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회당에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기만하면, 그 영원한 복을 누린다고 하니, 유대인들은 멘붕이요, 경외하는 자들은 그 소식이 너무나도 좋은 소식이니, 폭발적으로 전도가 일어날 수 있었다. 
  5. 이렇게 중대한 사안이였기 때문에, 바울이 돌도 맞고, 쫒겨다니고, 매도 맞고, 감옥에서 갖힌다. 
  6. 갈라디아서 5:11 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할례만 전했어도 박해를 받을 일이 없고, 복음의 걸림돌에 제거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7.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복을 누리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8. 가진 자, 누리는 자, 선택 받은 자들로써, 가지지 못하는 자,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삶을 통해 우월감을 즐기며 살고 있다. 
  9. 그리고 14절에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 졌나니”
  10. 율법을 지키려다가 율법을 이루지 못하는 일을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것을 바울은 비판하고 있다. 
  11. 우리는 구원과 복을 이야기 할 때에, 항상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12. 하나님 나라에 헌법이 있다면, 하나님을 포함에 모든 이들을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일 것이다. 
  13.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하신 복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졌고, 또한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14. 유대인들이 그렇게 수호하고자 한 것은 이 “영원한 복”에 관한 것이었다. 
  15. 세상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주신 그 영원한 복, 유대인들은 그렇게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폭력을 일삼으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다.
  16. 우리는 아주 크나큰 희생, 그런데 나의 희생 말고, 예수님의 희생으로 그 복을 누리는 특권을 얻었다. 대신, 그 댓가로 우리가 해야할 것이 있다.
  17. 언약에는 양자가 해야할 이행사항이 있다. 하나님은 그 축복의 약속을 지키시는 것이 이행사항이시며, 우리의 이행사항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것 처럼, 우리가 가는 곳마다 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8. 복이 된다는 것은, 내가 믿음을 통하여 복을 누리는 것처럼, 나를 통해 누군가가 복을 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19. 바울은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함으로 그들에게 “복” 이되었다. 
  20.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복된 소식은 경외하는 자들에게처럼 할례에 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아마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21. 우리가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전달하는 삶의 모습이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들이 예수님께로 이끌어 믿음으로 이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해야할 줄로 믿는다. 
  22. 복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1. 하나님의 복은 값 없이 차별 없이 주는 참된 복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유대인들과 다를 것 없이, 지키려하고, 누리려하고, 올라서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나누라하고, 전하라하고, 낮아지라 하신다. 
  2. 하나님은 복을 누리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넘어, 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고 계신다. 
  3. 태초부터 아담과 하와 노아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 내려오는 이 변함 없는 복된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4. 그래서 가는 곳마다 복이 되고, 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이 동일한 복을 받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