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을 먹으라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언 24:13-14

서론

우리가 사는 2020년의 한국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가 너무 좋은 세상이다. 오늘 본문에 꿀이 나오는데, 꿀도 핸드폰 하나면 금방 시켜서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꿀이라는 것이 고대에는 그렇게 쉽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론

꿀은 귀한 것

애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양봉의 개념이 있었다.[사진] 꿀로 음식이나 음료를 달게해서 먹는 방식이 존재했고, 의료용으로도 사용하고, 음식 보존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매장을 할 때에 사후 세계를 기원하면서 꿀단지를 넣어주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얻고 즐길 수 있는 물품은 아니었다.

이집트벽화 속 양봉
이스라엘에서 발굴된 양봉 도구의 벌을 위한 출입구
이스라엘에서 발굴된 양봉 도구의 뒤편 채취 뚜껑

성경에 꿀이 처음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야곱이 아들들을 어쩔 수 없이 두번 째로 애굽으로 곡식을 사오게 하려 보내면서 등장한다. 아들이 하나 사로잡혀있고, 아끼는 막내도 잘못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들들을 보내면서 애굽에 줄 선물을 챙겨주는데, 꿀 조금을 같이 보낸다. 양봉이 아니라 들에서 조금씩 채취한 들꿀이라 더 값어치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꿀의 가치는 작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세월이 흘러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며,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너희를 너희 조상들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내겠다. 그리고 나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걸쳐서 수도 없이 이 젖과 꿀이라는 단어가 가나안을 언급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우유와 꿀이 말그대로 강처럼 흐르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꿀이 많다는 것은 꿀을 만들어내는 식물들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식물이 많다는 것은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좋다는 것이고, 또한 가축 기르기에도 좋다는 말이다. 그러면 가축들의 젖도 자연히 풍부해진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환경으로 인도해 낼 것이고 소유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애굽에서 꿀이 무엇인지, 꿀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고 있지만, 아는데 먹지 못하는 이 종살이를 하고 있는 노예들에게 하나님은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소개를 하신다. 지속적으로.

그것 뿐이 아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에 나와서 먹을 것이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꿀 섞은 과자” 같은 것을 맛보게 하신다. 미리 꿀맛을 보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꿀이라는 것은 귀한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고, 구약에서는 미래와 소망을 암시하는 단어이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새해에는 안 그래도 단 사과에 꿀을 찍어먹는 풍습이 있다. 한 해를 기대하며 꿀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께 먹는 일이란

또 하나님께서 먹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하시는 말씀이, “여기 있는 것 다 먹어라.” 사실 다른 누릴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실 수도 있는데,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하신다.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후에 노아가 방주를 나와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이, 이제는, “고기도 먹어라.”

시내산에서 모세와 아론과 그의 자녀들과 장로 70명을 불러올리셔서 거하게 식사시키시고 보좌에 앉아계신 것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도 오셔서 하시는 일이, 항상 새로운 사람들 만나서 식사하시고, 그리고 심지어 먹는 일로 자신을 기념하라 하셨다. 하나님은 먹는 것을 중하게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여기셨다.

율법을 주시면서 복을 주실 때에, 빼놓지 않고 언급하시는 것이, 너희들이 말씀을 잘 따르면, 복을 누리고, 잘 먹고 잘 살 것이나, 거역한다면 저주를 받아 기근과 가뭄이 있고, 일한대로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오늘 본문에서 “꿀을 먹으라” 는 말은 “귀한 것 먹으라”는 말이고, 더 깊이 풀어보자면, “귀한 것, 즉, 말씀을 먹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세우라” 는 것이다.

장래와 소망을 위한 양식

시편기자는 수 차례 고백한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9:1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편 119:103

그가 얼마나 말씀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겼는지, 기쁨으로 여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것이나 단 것을 먹는다. 기분이 좀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럴 때 찾아야 할 것은 말씀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란다.

말씀은 그냥 우리 입에만 단 것이 아니라, 만나가 상징하는 것처럼, 희망차고, 넘치는 소망을 준다. 소망이 없을 때에, 다시 시작해야할 때에, 말씀은 우리에게 새 해에 돋는 해처럼,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고 다시 시작하게 한다. 말씀이 여러분에게 꿀이되기를 축원한다.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게 되기를 축원한다.

결론

우리는 모든 것이 풍요롭고, 부족한 것이 없고, 돈 말고는 얻는 것이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간직하고,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일에 소흘한 것 같다. 고대의 신자들은 성경을 오류없이 보존하기 위해 서기관이라는 직업을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복사하게 하고, 전쟁시 다 타버리지는 않을까 달달 외우고 하면서 보존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핸드폰 들어서 사진 한 장 찍은 것보다 성경 전문을 쳐넣은 문서 파일이 훨씬 더 용량이 조그만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말씀에 대한 가치가 그때에 비해 희미한가
지금은 돈 말고는 가치있게 여기는게 없는 세상 같다. 만약 지금 돈이 100억 생긴다고 상상해 보면, 장래가 있고, 소망이 넘칠 것이다. 계획하느라 잠도 못잘 것이다. 달아서 잠이 오겠나
말씀이 우리에게 그런 가치가 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그런 달달함으로 다가와야 하는 줄로 믿는다.

말씀은 우리에게 항상 희망과 소망을 준다. 그런데 그것을 실제화 시키는 것은 그것을 달달하게 삼키는 우리의 몫이다. 꿀을 드시라. 말씀 때문에,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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