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주실 것이요
2020년 5월 6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예배 타입
컨텐츠 타입
시리즈
성경권
설교자
주제
본문

잠언 1:1-7

예배일시

2020년 5월 6일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1-7

서론

저희 집에는 먹보가 하나 있다.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안 먹는 시간 보다 먹는 시간이 더 긴 위대한 아이다. 자기 식사를 다 끝내고 다른 사람이 먹기 시작하면 또 가서 입 벌리고 아~ 아~ 또죠~ 를 외친다. 저는 아이가 배부르고 한 입 먹고는 던져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낭비라고 주지 말라고, 먹지 말라고, 저리 가라고 하지만, 엄마는 귀엽다고 계속 준다.

성경 속에서도 우리가 과부와 재판장의 스토리를 통해서도 익히 알고 삼손과 데릴라의 스토리를 통해서도 알 듯이 조르는 것의 힘은 막강하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조르는 이 행위를 기도에 접목하기를 친히 가르쳐 주셨다.

잠언서를 앞으로 조금 나누려고 하는데, 잠언서는 읽으면 이리 갔다 저리갔다 주제 없이 좋은 말, 멋있는 말을 막 모아놓은 듯 느껴지지만, 그 지혜들을 전달하는 목적은 명확하다. 세 가지를 크게 가르친다. (1) 여호와를 경외하라 (2) 여호와를 신뢰하라 (3) 자녀를 가르쳐 올바른 길을 가게 하라 이 세 가지를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제해야하는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본론

우리가 구해야하는 것

둘째 아이가 먹는 것을 사정 없이 구한다고 말씀드렸다. 왜 그럴까? 그게 제일 좋으니까 그렇다. 먹을 때 난 제일 행복해, 아이가 제일 행복해하니까 부모는 그 때가 제일 이뻐 보인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다양한 것들을 구하는 기도를 해왔다. 사소한 것 부터 인생의 정말 중요한 문제들까지 해결을 위해 구해왔다.

그런데 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이 구절은 잠언 전체 책의 제목이다. 고대근동의 책제목은 항상 이렇게 따로쓰지 않고 처음 나오는게 제목이었다. 이 제목,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구절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직접 무언가를 구할 기회가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지혜를 구했었구나. 그래서 받았구나. 구하라 주실 것이요.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들의 서술어들을 유심히 보면, 한가지의 패턴을 읽게 된다. ‘알게하며,’ ‘깨닫게 하며,’ ‘훈계를 받게 하며,’ ‘더할 것이요,’ 얻을 것이라,’ ‘깨달으리라.’ 이 잠언을 통해서 독자가 얻는 유익은 무언가를 얻게 되고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알게되고, 깨닫게 되고, 더하여지고, 얻게 되려면 구해야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천국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동전을 찾기 위해 집을 뒤지는 여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돈 찾는 느낌 다 아실거다. 그런 느낌으로 지혜는 찾아야 된다. 그리고 심지어 돈하고도 안바꿀 정도로 그것을 최고의 가치에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삶의 변화는 안에서부터 일어난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 때부터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아무리 나의 삶의 어떤 부분을 고쳐볼려고 어떤 노력을 해봐도 몇일 지나면 포기해버리게 되는 것은 우리가 외부에서부터 나의 안을 변화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몇일 부지런하게 살아서 습관을 만든 다음에 나를 변화시켜보겠어 보다는 사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온다 라는 이 잠언의 말씀을 팔뚝에라도 붙혀서 시도 때도 없이 읽으며 나를 안에서부터 변화시키는 것이 옳은 접근법일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 이래로 인류를 향해 계속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직접,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통해, 성령을 통해, 성경을 통해. 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잠언 말씀을 달달 외우면 그 사람이 지혜로운가? 아니다. 얼마전에 도올 김용옥씨가 그런말을 했다. 예수는 자신만이 구원을 준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뭔소리야? 그 똑똑한 사람이 버젓이 성경에 써 있는 말이 안 써있다고 하는건 뭐지? 아무리 알고 외워봐야 심령을 터치하지 못하면 아무의미가 없다.

말씀이 내 안에서 나의 심령을 쪼개고 영을 새롭게 해야만이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이다. 그 변화는 점점 밖으로 터져나와 나의 모든 몸과 생각과 삶과 주변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지혜는 전인적인 변화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변화이다. 말씀만 알게되는 것 아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아니다. 하나님은 거듭나기를 원하신다. 요한복음에서 바리세인 니고데모가 와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자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느니라 하셨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아직 어린 아이들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 쪼금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다시 안 돌아가고 싶은데, 아무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완전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냐는 말이다. 불가능하다. 그런데 물과 성령으로는 가능하다. 그게 우리가 추구해야할 변화의 시작점이다. 이렇게 우리를 완전하게 안에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부터 온다.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구하고, 찾고, 받을 때에, 그 말씀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나를 안에서부터 변화시켜서 밖으로 표출되어지고, 나의 삶을 변화시킨다.

무엇보다 경외함으로 지혜를 구하시기를 축원한다. 성령님이 성도님들의 영을 만지시기를 축원한다. 큰 변화가 바로 오늘부터 일어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우리가 필요한게 너무나도 많지만 진짜로 주님께 구해서 받아야할 것은 지혜이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그 어느 것을 구하는 것보다, 무엇을 달라하였을 때에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처럼, 우리는 지혜를 구해야할 줄로 믿는다.

지혜라는 것은 찾아야 찾을 수 있고, 구해야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무엇보다 귀한 것으로 여겨야만 그 것이 내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지혜의 근원이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는 우리의 경험과 독서와 배움도 모두 헛 것이 되고만다.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 삶에 전인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지혜가 여러분의 삶을 채워나가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