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부르심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1-5

서론

“이름 값을 못한다”는 말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 말은 우리가 이름을 지어줄 때에는, 어떤 기대나, 역할을 부여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단 사람 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이든지 그렇다. 지은 이의 포부, 기대가 담겨 있다. 이렇게 존재하는 것들은 기대되는 어떤 역할이나 기능이 있다. 오늘은 창세기 말씀을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본론

하나님은 창조자 우리는 피조물

성경을 열면 가장 먼저 창세기가 아주 간결하고, 강한 어조로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 물론 고대 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여느 종교에서도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식의 전설들을 가지고 있는 종교들도 있지만, 이렇게 간결하고,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하나님이 만드셨다” 라고 짚고 들어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만큼 이 창세기 초반에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전달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메세지는 하나님은 ‘창조자’ 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관계에 대한 것이다.

부모님이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다 라는 것만으로도 더이상 이유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관계가 정의된다. 아이에게 “이거 아빠가 주려고 사왔어, 만들었어” 라고만 말해도 아이들은 그 사물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과 또한 나를 만드신 분으로 인정할 때에, 모든 것은 달라진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만드신 방식이 그렇다.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 잘 살아지게끔 애초에 만드신 것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독립적인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독립적일 수 있는 것은 의존적이기 때문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고 싶다. 무언가 스스로 선택을 하고 행동을 했을 때에, 그 것의 뒷감당을 해주는 부모님이 있다는 일종의 의존감이 없이는 독립성을 처음에 키워가기가 어렵다. 물론 그것을 스스로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분들도 있고 그렇게 해낸 분들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세기 1장을 통해 하시는 말씀도 비슷하다. “내가 창조주야. 널 만들었지. 보기 좋네. 자 내가 뒤 봐줄테니까 이제 잘 살아봐.”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이심을 기억하셔서 이 인생 잘 살아질 수 있기를 축복한다.

고대시대의 존재를 바라보는 세계관

창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창조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과학적인 사고로 접근하게된다. 우리가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생각해볼 때에 근육과 뼈와 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존재를 떠올리고 하나님은 흙과 숨으로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고대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것들, 생물학적인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존재를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기능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예를 들자면, 태양이 빛을 발하는 에너지원이 아닌, 모든 만물을 자라게하고 살게하는 기능을 하는, 역할을하는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물을 살게하는 태양은 신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가 깨달아 알기 원하시는 것은 흙과 숨으로 이 복잡한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어떤 기능, 역할을 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야를 온 우주에 놓고 “와, 이 놀라운 우주를 만드셨네” 라며 놀랄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나를 만드시고 어떤 역할을 기대하시는구나” 라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우리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기능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창조와 축복의 관계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시고, 좋았더라 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는 잘 살라고 축복을 해 주셨다. 이렇게 축복이라는 것은 창조와 땔 수 없는 관계 안에 있다. 창조는 히브리어로 ‘바라’ 라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람 이름 뜻은 족속의 아버지인데, 후손을 창조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창조하다’라는 단어를 부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 아브람이 맡은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역할은 가는 곳마다 복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은 열국의 아버지가 됨으로서 성취되었다. 우리가 모두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고 이 복을 누리는 것은 결국 새 피조물로 창조되어지고 또 우리가 창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복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이고,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신 그 명령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

창조 기사를 보며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은 분명해졌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는 사실 성경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건 사실 우리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깨닫고 마음에 새겨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그냥 존재하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하라고 창조하신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부르심이라고 칭한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는 귀한 인생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세상 모든 만물은 피조물이다. 우리도 그렇다. 고대시대에는 존재를 바라볼 때에 물질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그 존재의 역할, 기능을 인식했다. 하나님에게는 온 우주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안에 모든 것들은 역할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역할을 기대하신다.

창조와 축복은 깊은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고 온 인류의 축복이 되라는 역할을 위임받았다. 크리스찬으로서 우리가 받은 역할은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의 명을 받아 창조하는 것, 복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이 되는 것이다. 이 창조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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