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예배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잠언 15:8-14

서론

이런저런 악기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저런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많이 배우는데, 누구로부터 배우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피교육자는 지금 배우는 것에 대한 지식이 제로이기 때문에 온전히 교육자의 말을 진리로 여기고 배운다. 그리고 그 자세가 사실 피교육자에게 필요한 자세다. 존경과 믿음으로 배우는 자세. 그런데, 어디서 조금 배워봐서, 속 안에서 선생을 평가하면서 전 선생과 비교하면서 배우기 시작하면, 그 교육은 이미 실패다.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탁구를 한 번 배워본 적이 있다. 처음 배운 곳의 관장은 국가대표출신이었는데, 뭐 아주 가르치는게 기가막힌다. 그리고 일단 국대라는 명함이 주는 신뢰는, 이건 무조건 진리니까 배워야된다는 자세다. 그러다가 몇년 뒤에 군자동에 있는 탁구장에 가서 한 번 더 배워볼려고 갔는데, 뭐 더 말씀은 안드리겠다. 가르침이 귀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생을 배워가는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국가대표 정도가 아니라, 온 우주 대표시니까,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네, 네, 네, 네” 여야한다.

본론

하나님은 악인의 마음을 아신다

11절은 말한다. “스올과 아바돈”은 죽음과 파멸을 의미하는데, 고대시대의 세계관은 지옥이 저 아래에 있다고 믿었다. 즉, 하나님은 그 깊은 곳에 있는 것들까지 아시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모르시겠냐. 고수들, 전문가들, 경험자들은 배우러온 이들을 잠깐만 봐도 딱 어느 수준인지를 알 수 있고, 가망있는지, 없는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가끔 끈기 있는 놈들이 재능아들을 이기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는지, 삶의 자리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감찰하신다.

그래서 사실 신앙생활이 더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국대출신 선생의 말을 잘 들으면, 그가 십수년간 피땀흘려 쌓은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고, 시행착오를 겪지않고 지름길을 걸어갈 수 있다. 우리가 우주대표출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성경이 말하는 의인의 길, 복을 누리는 길, 장수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런데, 듣지 않으면, 내 생각을 가미해서 판단하고, 이래도 괜찮겠지, 이것은 눈감아 주시겠지 하기 시작하면, 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길이고, 징계를 받는 길이고, 죽음에 이르게되는 길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마음을 아신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악인의 길을 걷게 되고, 파멸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와중에도 우리는 여전히 예배를 드릴 것이고, 교회에 나아올 것이다. 그런데,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사실이다.

제사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값을 치루고, 희생을 치루고, 값비싼 동물이나, 곡식이나, 포도주를 가지고 드리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물질적 희생까지 해서 드리는 어떤 이들의 제사를 미워하신다고 하신다. 왜인가? 하나님은 고기를, 곡식을, 포도주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자들의 중심을 체크하신다는 것이다. 제사라는 것은 개인이 드리는 제물만이 관여되는 이벤트가 아니다. 제사는 예배자, 그리고 반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공동체가 포함되는 공동체적 행위이다. 제사가 진행되면, 하나님이 반응하실 뿐만 아니라, 모두 모여 먹고 마시며 축제를 갖는 장면을 성경 속에서 볼 수 있다. 그만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담고 있다.

그런데, 악인의 길은 공생, 상생하는 법을 모른다. 개인의 안위와, 개인의 복과, 개인의 삶을 위해 산다. 그리고 예배도 그렇게 자신을 위해 드린다. 예배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달래는 과정이 아니다. 예배는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인 우리들이지만 받아주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는 기뻐하신다. 우리가 모여 예배할 때에, 하나님과 나뿐 아니라, 모두의 기쁨이며, 한 마음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높이고 만나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변화의 주체이다

악인의 제사의 문제점은 여느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신의 마음을 바꾸고, 길흉화복을 제어해보려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께 구하고 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원한다면, 그 변화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셔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꿔보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시도록, 변화시키시도록 내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손으로 지으시고, 숨결을 불어넣으시고 그 분의 말씀으로 완성해 가신다. 우리가 의인의 삶, 복을 누리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나아가, 나를 변화시켜 달라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과정을 거부한다. 오직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한다.

14절에,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한다했다. 다시 말하면, 간절히 찾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만들어가시도록 우리를 내어드려야 한다.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오늘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예배에 대해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가 가르침을 멀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경이 말하는 악인의 길로 걷게된다. 그리고, 무서운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아신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신다.

그런데 더 무서운게 있다면, 그것은 악인의 길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반복해서 드려지는 많은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앞에 즐거이 받아지는 예배가 아닌, 악인의 제사가 돼 버린다는 것이다. 훈계를 멀리하면, 우리의 예배가 망가진다. 예배가 망가지면, 우리는 거만하게도 나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한다. 나의 바램대로 하나님이 해주시기만을 바라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져가고, 하나님에 의해 움직여야한다. 죄를 고백하고, 겸손하게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예배,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정의와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예배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예배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미련한 것을 즐기는 자가 아니라, 지식과 훈계를 찾는 성도님들 되셔서, 사랑받는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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