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를 지키자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 6:10-14

서론

우리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부정적이고, 나에게 도전 보다는 포기를 권했고,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잘 될 거라고 해보라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들 중 누구 때문에 하지 않을 일도 있을 것이고, 과감히 도전해 본 일도 있었을 것이다.

듣는 것에는 힘이 있어서, 자꾸 되새기며 생각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들은 것에 따라 결정을 내려 버리게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에게 말씀을 계속해서 들려주라, 기억하게 하라 명하셨다. 느헤미야를 접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한가지는 느헤미야는 자신의 귀를 귀하게 여겨서, 아껴쓸 줄 알았다는 점이다.

본론

우리의 소식은 누군가 듣고 반응한다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탁월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각자 힘을 낼 수있도록 독려하고, 지도자로서 군림하려들지도 아니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통해 한마음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런 탁월함 덕분에, 무너진 성벽이 모두 연결되고, 허물어진 틈이 남지않게 되었다. 아직 성문들에 문짝은 달지 못했지만, 성으로서의 모양을 회복했다.

느헤미야서에서,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이 무언가를 해내면, 누군가가 그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고, 공격을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작은 일이라도 도전해 보고, 작은 성공, 혹은 실패를 겪을 때마다 그 소식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들려지게된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그게 사람의 본성인 듯 싶다. 도전한다고 하면 비웃고, 성공하면 배가 아프고, 실패하면 그럴줄 알았다며 무시한다.

우리는 지혜롭게 대처해야한다

느헤미야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이방 지도자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기별을 하나, 느헤미야는 관심이 없다. 난 “큰 역사”를 하니 만나러 갈 수 없다며 거절한다.

느헤미야는 첫째, 목표가 분명하고,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다.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둘째,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뱉어내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절대로 내어주지 않는다. 무려 네 번이나 만나자고 하는 청을 거절한다. 물론 우리가 귀를 막고 살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정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할 때에 우리의 영은 피폐해진다.

셋째,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를 분별할 줄 안다. 무턱대고 그가 듣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원수들은 선지자를 내세워, 일을 영적인 것으로 가장해서 다가오지만, 느헤미야에게는 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가 느헤미야처럼 이렇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가지가 꼭 필요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하려고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명히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목소리에도 흔들리게 되고, 귀를 부정적인 것, 속이는 것에 빼앗기게 된다. 새로운 일을 하실 때에, 먼저 하나님과 그 일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시고 시작하신다면은, 우리의 귀를 부정적인 것에,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을 줄로 믿는다.

누구와 대할 것인가

잠깐 말씀드렸는데, 느헤미야서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패턴이 있다. 느헤미야나 유대인들이 무엇가를 하려고 하거나, 해내면, 누군가가 그 소식을 듣고, 공격하는 행동을 한다. 느헤미야는 대처를 하고 마지막에 꼭 하는 행동이 있는데,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이 상황과 저런 악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기도를 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부정적으로 나에게 다가올 때에, 그들과 직접적으로 맞상대하려하고, 그 일을 다루려고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은 그런 상황에 그 문제를 직접 그들과 다루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간다는 사실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듯이 느헤미야도 공격하며 다가오는 적들을 그냥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그 문제를 들고 나아가 이 문제를, 이 원수들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많은 마찰과 크고 작은 공격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버럭 화를 내버릴 수도 있고, 그냥 무시를 해버릴 수도 있고, 조용히 혼자 많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그것들과 대면하고 그 문제들을 다루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우리의 귀를 그것에 빼앗기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하나님, 기억해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그 문제들을 다루어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다. 누가 왈가왈가할만 것들이 아니다.

결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이 중요하든 중요하지 않든 그 일에 사람들을 반응하고 피드백을 줄 것이다. 그런데 보통 부정적인 반응들이 더 많다. 우리는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을 하기 앞서 하나님과 그 일에 대해서 상의를 해놓아야 어떤 공격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귀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반응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려고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그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성도님들의 하시는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 되고, 어떤 부정적인 반응들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는 일들이 넘쳐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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