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1-5
-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게되었다. 졸지에 사랑받는 아들에서 종이되었다. 그런데, 2절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성경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만큼 큰 복은 없다. 이 “임마누엘”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회복하시고자 하신 궁극적인 상태이기도 하다. 하나님과 함께한 요셉은 노예가 되어도 총무가 되고, 주인에게 복덩어리가 되었다. 요셉이 훌륭한 인격과,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오로지 한가지 이유로 그랬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그럴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함께하시기에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보며
요셉은 스스로 형통했던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주인 보디발이 요셉을 보며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 나라의 권세자가 한낱 노예를 보며 “신”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고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고대시대에 신에게 복을 받는다는 것은 농사가 잘된 다거나 자녀의 축복을 누린다거나 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요셉이 맡는 일마다 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속한 곳이 형통을 누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를 것 같지만 머지않아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인 줄로 믿는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 힘써야 하겠다. 요셉의 하나님께서 성도님들과 함께하셔서 형통한 한 주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