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3-8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서론
서양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서프라이즈다. 기대 안했던 것을 갑자기 대하게 해서 감동을 주는 걸 참 좋아한다. 동양 사람들은 대부분 축하도 조금은 무심하게 하고, 선물도 뻔하게 주고 하는데, 참 문화가 다르다. 무엇이든지 기대를 많이하면 실망도 크다. 음식이든 영화든 기대 안하고 대했을 때 좋지, 옆에서 누가 맛있다 맜있다 해서 가보면 그냥 그래. 그런데 기대없이 대했는데 조금 좋으면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본론
좋았던 것이 악한 것이 되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너무 좋다고 하셨다. 너무 좋으셨고, 기대도 크셨다. 그래서 그런지 실망도 크셨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 좋다고 하시던 사람들을 보시면서 이제는 악하다고 하신다.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 투성이다. 하나님 앞에 선택된 이들이 끝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이 되고는 한다. 대표적으로 사울도 그랬고, 솔로몬도 그랬다. 하나님이 택한 많은 인물들이 끝까지 신실하게 맡은 일을 마무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청년들과 나누는 묵상집에서 히브리서를 읽다가 거기서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일을 마치시고 쉬셨다. 그러니 우리도 안식을 위해서는 끝마쳐야 된다. 신약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들 중에 한가지는 끝까지 붙잡는 것이다. 히브리서 4:16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처음 들은 복음과 말씀들을 통해 가진 믿음을 끝까지 붙들 때에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 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우리의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유익은 아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이 좋았다. 다 괜찮았다. 그런데,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 또한 있었다. 심지어 먹지 말아야할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도 있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큰 만큼 책임도 크다. 자유가 좋은 것인가? 좋은게 좋은 것인가? 많은 것이 가능한 것은 유익한 것이 아니다. 책임이 크다는 말이다. 아이들에게 못하게하는 것이 투성이다. 하지말라는 말도 지겨울 정도다. 다 하라고 내버려둔다면, 이미 아이들 몸이 성한데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야채만 먹을 수도 있고, 제사 드린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술을 먹을 수 있고, 담배도 필 수 있다. 그런데 할 수 있다고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가르쳐 준다.
천사들 혹은 영적인 존재들이 사람들에게 와서 딸들에게 들어와 자식을 낳았다고 했는데, 여기 언어가 결코 강압적인 언어들이 아니다. 보편적으로 혼인을 하는 경우에 쓰이는 단어들이다. 다시 말하면, 딸들의 부모 또한 동의 했으며 자신들이 가진 자유를 가지고 책임지지도 못할 행동들을 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게 된 것처럼, 오늘 본문의 인물들도 수명 단축이라는 결과를 맞게된다. 평균적으로 성경 초기 시대보다 1/7 수준으로 줄게 된다. 상상해 보시라, 800년을 넘게 산다면, 초장수를 해서 100세여도 그 연륜이 지금의 초등학생 수준이다. 그들이 초래한 결과는 엄청나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우리는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책임을 지게된다.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자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인간 세상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합당한 자가 있었으니 노아다. 하나님이 후회 하시고 한탄하셔서 사람들을 싹다 치워버려야겠다고 결심하신 것이라고 오해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치우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고, 그 방법을 택하실 수 밖에 없으셨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은혜 받을 만한 사람은 왜 찾으시고, 왜 다시 그 꼴을 보시려고 다시 시작하시겠는가. 신약에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노아도 나중에 실수도 하고 하는 것 보면, 한 낱 사람에 불과한데, 얼마나 그 시대에 악했는지 의롭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동행한 자로 평가받았다. 사실 노아가 어떻게 의로웠고 동행했는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으니 자세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노아는 믿음이 정말 말도 안되게 컸다. 그 긴 시간 산 위에 방주를 짓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하나님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처음 들은 것을 끝까지 가져가는 어마어마한 믿음의 소유자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좋은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택하는 것이다.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말씀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서 은혜를 받은 노아를 통해 우리는 한가지를 알게된다. 좋은게 좋은게 아니라, 옳은게 좋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결론
하나님의 후회와 한탄은 상황을 판단하시고 균형을 맞추시는데에, 문제를 해결하시는데에 그 이유가 있다. 우리 삶을 후회하시는데 그 포커스가 있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 때문에 우리의 존재 자체를 후회하셔서 버려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이 무너져 버리지 않도록 새 길을 내 신다. 엉망이된 인간 세계의 해결책으로 하나님은 은혜를 입을 자를 찾으셨다.. 그 은혜를 입은 노아는 달리 의인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의인으로 칭함 받게 했다. 노아는 좋은 것을 택하지 않고, 옳은 것, 하나님의 말씀을 택했다. 우리의 엉망된 삶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 은혜 받을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허락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믿고,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게 아니라 옳은 것을 택하시는 성도님들 되셔서 은혜를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