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사도행전 25:13-22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심리할는지 몰라서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서론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당시 존재했던 다양한 권력을 보게된다. 아그립바왕, 버니게, 베스도, 가이사. 그리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이라고 표현된 종교지도자들이 있다. 이들이 어떤 위치에서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역사적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한정된 시간에 다 전달해드릴 수는 없고, 오늘은 아그립바에 대해서 아주 짧고 간결하게 말씀드리겠다.
본론
유대지방의 권력의 역사
유대지방의 신약역사는 페르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바사라고 잘 알고 있다. 엄청나게 영토를 넓혔다.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협력으로 가까스로 버텨내고, 그 이후 불세출의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의 출현으로 페르시아를 물려내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영토를 인도까지 점령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알렉산더가 삼십대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자 네 명의 장군들이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된다.
노란 영토를 차지한 것이 셀루시드 장군의 영토이다. 이 셀루시드 왕조의 영향을 유대지방은 직접적으로 받게된다.
기원전 167년에 이 왕조의 통치하에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을 하던 맛다디아라는 제사장이 황제에게 드리는 제사를 거부하면서 혁명이 일어나고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유대의 독립을 미약하게나마 되찾게된다.
하지만 아직 셀루시드 왕조는 건재하다. 그 때 유대지도자들이 기댈 곳이 나타났으니. 로마다.
로마는 점차 세력을 키우고 새로운 영토를 필요로하게 되었다. 유대지도자들은 신흥세력 로마가 희망이었다. 로마의 의회에 가서 자치권을 인정해달라며 친분을 쌓아갔다. 결국 폼페이 장군과 그 후에 최초의 황제들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때로는 왕으로, 때로는 관리로 유대지역을 통치해 간다. 로마는 금세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되면서 유대지도자들과 로마와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진다.
오늘 본문에 해롯 아그립바 왕이 등장한다. 해롯가문도 16부작 드라마인데 생략하자. 짧게 이야기 하자면, 해롯대왕은 아들 둘을 어려서 로마에 보내어 교육시키고 성인이되자 불러들였다.
그런데 로마 스타일인데다가 자기와 다르게 엄마의 정통혈통이라 민중들이 좋아해 인기가 좋았다. 불안해서 둘을 처단하고 그 중에 한 녀석의 아들을 로마로 보낸다. 그 아들이 아그립바 1세이다.
황제가 딱히 여겨서 미래의 황제가 되는 글라우디우스 같이 교육을 받으며 친분을 쌓은 그는 돌아와 관리가 아닌 “왕”으로써 잘 다스린다. 그가 사도행전 12장에서 벌레에 먹혀 죽는 왕이다.
그의 아들이고 벨릭스 총독의 아내인 드루실라와 남매지간인 아그립바 2세가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다. 그도 역시 아버지가 죽을 때에 로마에 황제와 있었는데 황제는 계속해서 머물며 교육을 받게 했고 차후에 유대지역 근교 정계에 진출시킨다. 유대지역을 관리하지 않았다. 그 것은 벨릭스와, 베스도가 하는 일이었다.
긴 이야기 드렸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왕”이라고 하는 것, 즉 해롯왕들은 사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왕은 아니고, 로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을 충성되게 서포트하는 댓가로 한 자리를 받은 높은 관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치가, 종교지도자, 기독교인의 사고 차이
소위 왕이라는 유대 정치가들과, 총독이라는 로마관리들과, 기독교인의 대표급인 바울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자. 살펴봤듯이 아그립바는 어려서부터 아니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로마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엘리트도 엘리트 정도가 아니라, 황제의 관저에서 최고 지성들, 그리스 철학자들을 과외선생으로 두고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사고체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보는게 맞다. 유대인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표면상으로만 유대인이다. 바울의 기나긴 설명과 간증에도 무슨 그런 말로 나를 전도하려 드냐고 대답할 뿐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어떤가?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중심의 지도층은 부활을 믿지 않을 뿐더러, 사실 부활이 그들의 고소의 이유가 아니다. 그들은 바울이 “소란”을 피운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왜냐하면 “소란” 이 로마가 가장 엄하게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바울을 없애고 싶다. 아무리 부활을 외쳐도 반응 없는 이 무리들에게 바울은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외쳐대고 있다.
로마에서 출발한 힘, 갈릴리에서 시작한 힘
이게 2천년 전 이야기인 것 같지만 기독교의 현 주소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고 매 주 모여 그 부활을 기념하는데, 세상은 마냥 시끄럽다고 한다. 요즘은 모이지 말라는데 모인다고 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이는 교회, 모이지 않는 교회, 모일 수 없는 교회, 모두 틀리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바울을 통해 한가지 배워야할 기독교인들의 자세가 있다면, 어디에 처하던지, 누구 앞에서이던지,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울이 목숨걸고 한 일이다.
그 시대에 모든 힘은 로마를 통해 검증되고 인정받아 힘을 얻어 돌아왔다. 모든 권력은 로마를 통해 나왔다. 해롯왕들 또한 그것 없이는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것 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제약된 환경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자유케 풀어놓으신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그 성전이 필요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예배는 어디서든 어떻게든 드려질 수 있게된 것이다.
이 모든 제약과 힘을 부서뜨리고 넘어서는 힘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도 아닌 유대아닌 갈릴리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것이다. 마치 광진구 군자동처럼. 갈릴리의 이 작은 힘은 로마 제국 모든 곳을 침투하고 로마까지 침투해서 그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든 보좌 위에 올려놓았다. 어디서든 부활을 말할 수 있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결론
다시 살아난다고, 다시 일어난다고, 죽은 것이 아니라고, 회복될 거라고, 괜찮다고,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부활의 능력을 말하는 것임을 믿는다. 교회가 잠시 닫든, 굳세게 버티고 열든, 나라가 잠시 닫으라고 하든, 중요한 것은 로마제국을 이기신 갈릴리 목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한국과 전세계의 교회들을 다시 불과 같이 일어나게 하실 것이다. 동일하게 우리의 삶과 경제 또한 다시 일어나고 살아나게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