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와 절제와 심판
2019년 7월 4일

의와 절제와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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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22-27

예배일시

2019년 7월 3일

서론

  1.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변호사를 대동하여 바울을 고발하고, 바울은 또 그 고발에 맞대응을 한다. 그들의 고발이 근거가 없으며, 심지어 문제를 제기한 에베소서 아시아인들도 이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결백을 주장한다.
  2. 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들어 알고 있던 벨릭스는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판결을 연기하기로 한다.
  3. 바울이 구류되어 있는 동안 벨릭스는 바울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벨릭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은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한다.

본론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

  1. 벨릭스는 팔레스틴 지역의 총독으로 이미 수 년간 일해 왔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리고 가이사랴 지역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익히 그 “도”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2. 이 분쟁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지극히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에, 벨릭스는 로마법에 의해서 판단을 하면, 바울을 놓아주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또 유대인들의 여론을 의식해 바울을 일단 구류해 놓기로 결정한다.
  3. 대신 바울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보장해서, 친구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4.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팔레스틴의 최고 권력인 벨릭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다. 벨릭스와 그의 부인 드루실라가 바울을 불러 복음을 듣게 된다. 
  5. 이 드루실라에 대해 잠깐 알고 넘어가자면, 이 여인은 베드로가 감옥에서 천사에 의해 풀려나고 낙담해 가이사랴로 돌아갔던 그 헤롯왕의 셋째 딸이다. 
  6. 그 헤롯은 결국 “신의 소리다” 라는 칭송 앞에 겸손하지 못해, 하나님이 치셔서 죽게되었었는데, 그 당시에 드루실라는 6살의 어린 아이였다. 
  7. 십대 초반에 시리아에 작은 도시 왕과 정약 결혼을 하고 살고 있던 중에 벨릭스가 드루실라의 미모에 반해서 그녀를 설득해 첫째 남편을 떠나와 자신과 결혼하게 한다. 벨릭스나 드루실라나 보통 내기들이 아니다. 그 때 나이 14살이었고, 오늘 본문에서는 19살이다. 20살이 채 안된 여인이다. 
  8. 벨릭스는 그래도 유대인으로써 자신보다 토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부인과 함께 그 도에 대해 더 자세히 듣는다. 
  9. 예수 믿는 도라는 것이 한 문장으로 짧게 요약하기는 쉽지가 않지만, 그 중에도 오늘 본문에서 벨릭스가 복음으로부터 멀어져가게 한 결정적인 것은 25절에서 보듯이, “의와 절제와 오는 심판”에 관한 것이다. 
  10. 이 세 가지에 관한 것을 듣자 벨릭스는 두려워하여 바울에게 물러가 있으라 한다. 여기서 두렵다는 것은, 긴장되고, 불편한 심기를 묘사한다. 
  11. 벨릭스에게는 복음의 이 불편한 부분이 결정적으로 그가 신앙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절제란

  1. 특히 절제라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 중요함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된다.
  2. 잠언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마음을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 잠언 25:28 “자기의마음을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4. 절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들의 의로움 뿐 아니라, 성령의 열매 9가지 열매중에 있을만큼 절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5. 베드로후서 1장에서 그 질문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베드로후서 1:3-8
  1.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은 예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 위에다가 성품을 쌓는 것이다. 
  2. 덕을 쌓고, 지식을 쌓고, 절제를 쌓고, 인내를 쌓고, 경건을 쌓고, 형제 우애를 쌓고, 결국 그 분의 성품인 온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다. 
  3. 이것들을 흡족하지 않은 사람은 “게으르고 열매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4. 이 말씀에서 믿음에서 사랑으로 옮겨 가는 신앙인들이 성장과정을 보라. 이 과정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절제와 인내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발전하고 온전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이 절제와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5. 우리의 신앙이 자신을 절제하고 인내함이 있을 때에, 온전한 신앙인으로 거듭날 줄로 믿는다.  

심판을 믿어야 절제할 수 있다

  1.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바울의 그 메세지가 마냥 불편하기만 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바울이 “의와 절제와 심판” 에 대해서 전해주었는데도, 벨릭스는 절제는 커녕, 바울에게 뇌물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2. 말씀드린 벨릭스와 드루실라의 과거를 돌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의로움과 절제의 가르침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만약에 벨릭스와 드루실라가 그 메세지를 듣고, 마음이 두려울 때에, 반응했다면, 베드로의 메세지에 “그럼 우리가 어쩌면 좋겠냐?” 라고 묻던 그들처럼, 회개했다면, 그들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3. 벨릭스, 드루실라와 베드로의 설교에 반응했던 유대인들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리세인들과 민중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4. 벨릭스는 이방인이었고, 드루실라는 헤롯왕가에서 자랐으니, 그런 개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믿음의 결여가 그들을 의와 절제의 필요성으로 이끌어 가지 못했다. 
  5.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것을 배운다. 하나님이 장차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의롭고 절제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6.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심판을 거쳐 주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줄로 믿는다. 

결론

  1. 절제, 자제할 수 있는 힘은 신실한 신앙생활을 가능케 한다. 우리의 의로움과 절제는 장차 다가올 심판에서 우리의 신앙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2. 벨릭스는 자신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그 진리와 심판이 불편했다. 그리고 여전히 의와 절제와는 거리가 멀게, 바울에게 뇌물을 받을까 하며 기대했다.
  3. 그의 지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사건 이 후 수 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는 신앙인으로써도 새 삶을 시작하지 못했다. 다가올 심판에 대한 믿음 없이는 의와 절제는 가능하지 않다. 
  4. 현대 교회에서 심판이 자주 선포되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심판을 염두해 두라 가르친다. 그 심판을 염두해 의롭게 절제하며 살라고 가르친다.
  5. 인정교회 성도님들은 심판에 대해 기쁨으로 듣고 믿어서, 의롭고 절제된 생활하시고, 예비된 모든 것을 누리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