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1-15
-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서론
- 바울과 선교팀, 실라, 디모데, 누가는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떠나 사모드라게라는 섬으로 가 밤을 보내고, 네압볼리로 간다. [사진]
- 항구 도시 네압볼리에서 큰 대로가 하나 있는데, 동에서 로마로 갈 때에 사용되는 주된 길이다. 그 길을 통해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 빌립보에 이르렀다. 이 길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선교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로마로 바울을 이끌어 가고 계심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
- 마게도냐는 네개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빌립보는 그 중에 로마의 식민지로써,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빌립이 만든 도시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작은 로마”로써 단단한 바탕을 가지고 있었다.
- 드로아까지는 현대의 터키지역이었다면, 빌립보에서 부터 바울과 선교팀의 본격적인 유럽 선교가 처음으로 시작된다.
본론
신앙생활 자체가 복음이 될 때
- 선교팀은 빌립보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이 되자, 기도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이고, 디모데는 반유대인이며, 누가는 이방인이다. 이들이 같이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안식일에 기도를 하려고 하고 있다.
- 한가지 우리가 바울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 중 하나는, 바울은 유대교를 대적하거나, 철지난 풍습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는 뼛속부터 유대인이며, 기독교는 유대교를 대체하려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완성하려 했다는 점이다.
- 그래서 그는 유대풍습을 그대로 여전히 따랐고,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했다. 이방인 누가나 반유대인 디모데와도 같이 그렇게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바울은 그의 삶이 녹아져 있고,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노력했다.
-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차 한대로 주차장으로 쑥 들어오더니, 황급히 중동남성이 하나 내리더니 성전쪽으로 들어가 기둥에 입을 맞추고 기도를 잠깐 하더니 떠났다. 그리고 나서 몇번 그런 광경을 봤는데, 한 번은 자신도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그런지, 다가와서 나도 크리스챤이라고 기도하는 거라는 말을 하고 또 황급히 떠났다.
- 아마도 그들의 나라에 유력한 종교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해야하는 율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고 기독교로 개종을 했지만, 여전히 그 삶에 녹아 있는 그 “모든 것을 중단하고 하는 기도”가 몸에 베어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 그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을 했다. 어쩌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제일 기도 생활을 편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또 하나 배운 것은, 기도라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굳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삶에 그냥 녹아 있어야 할 것인데…
- 물론 우리나라도 우리만의 문화적인 특징이 있다. 산에서 기도하는 것, 새벽에 기도하는 것 등등은, 우리나라의 대대로 내려오는 토속적인 전통의 영향인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세계에 어디를 가도 이런 신앙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 미국에서 자주 듣던 소리가 있다. 해외에 나가면, 중국인들을 식당을 차리고, 일본인들은 상사를 열고, 한국인들을 교회나 사찰을 세운다. 우리나라의 영적인 열심은 확실히 종특이다.
- 우리의 삶, 우리의 문화, 우리의 특징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된다면, 그것만큼 우리 삶에 유익하고 즐거운 것도 없을 것이다.
- 우리나라의 교회의 모습은 미국선교사들과 교육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기 때문에, 형식과 문화가 많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성도들의 삶의 모습은 미국인 성도들의 삶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 한가지 권면드리고 싶은 것은, 신앙생활과 경건생활을 해나가실 때에, 무조건 지금까지 해오던 것을 항상 택하기보다는, 물론 그렇게 하셔도 된다, 그것도 이제 우리의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현재 나의 삶에 자연스럽게 베어서 억지스럽지 않게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바울과 선교팀이 지금 택하고 있는 복음의 전달 방식은, 그들의 삶에 패턴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고, 기도의 처소를 찾고,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며, 그들이 믿는 복음을 전해주고 있는 것 뿐이다.
- 우리의 삶이 복음 자체가 될 때에, 우리의 삶의 모습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경” 으로 다가올 때에,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을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의 언행을 통해 일하실 때
- 바울이 기도의 처소를 찾아 빌립보성 밖으로 나갔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돌에 새긴 비문들 중에는 약 40% 정도가 그리스말이라면, 마케도니아 지역의 비율은 80%가 넘는다고 한다.
- 그 말은 로마인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고, 그에 따라 유대인들도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아시아와 갈라디아지역과는 달리 유대인 “회당”이 없고, 성 밖 강가에서 모여 기도를 하는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그룹을 만났다. 보통 유대인들을 물에 손을 씻거나 하는 의식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물을 얻기 쉬운 강가에 회당이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 바울은 그 그룹 중에 루디아라는 한 여인을 만나는데, 루디아는 두아디라에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여인이다.
- 두아디라는 고대에 염색산업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인데, ㅌ,ㄱ히 보라색 염료는 매우 귀한 것이었다. 보라색이 영어로 Purple 인데, 이 단어 자체가 보라색 염료의 재료인 포푸라 라는 소라 이름에서 왔다. 이 소라가 살아 있는 동안만 짜낼 수 있는 쬐금의 보라색을 엄청나게 많이 모아야 옷 하나를 염색가능할 정도로 귀했다.
- 물론 가짜방법도 있어서, 식물에서 나오는 빨강과, 파란색을 섞어서 만들기도 했다.
- 어쨋든 루디아는 조금 부자이던지, 많이 부자인던지 둘 중에 하나였다.
- 이 여인이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나, 하나님을 섬기는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을 다 대리고 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혼이나 사별을 경험 했을 가능성이 높다.
- 실제로 고대 기독교인의 구성은 여자가 80%정도로 높았다고 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 하다.
- 이 여인이 바울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다가. 복음을 듣고 믿게 된다. 누가는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셨다” 라고 증언하고 있다.
-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앞에,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사도행전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신도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아직까지는 그냥 이방인보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이미 하나님에 대해 들어보았고, 열망이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라는 불씨가 던져졌을 때 타오른다.
- 우리가 살면서 하는 말과 행동도 어찌보면, 더 귀하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교회 한 번쯤 다녀본 사람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그들에게 우리의 말과 행동이 어찌보면, 더 주님이 마음을 여시도록 사용될 수 있다.
- 우리가 언행이 주님이 마음을 여시도록 사용되어지는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 사도행전을 계속해서 대하시면서, 보실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고, 하나님께서 저자이시고, 베드로, 바울은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 그런데 이 등장인물이 중요하다.
- 하나님은 그냥 필요한 순간에 불을 내리고, 기적을 나타내시고, 그렇게 하시고 계시지 않는다.
- 하나님은 “사람”을 지속적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시면, 새로운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게 하신다.
- 우리가 교회에서 세상에서 사역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아니라, 사람이다. 한 사람을 얻기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인데, 일을 하다보면, 일을 끝내기 위해 사람을 잃기도 한다.
- 바울도 권고하듯이 공동체 안에 끝 없는 용서와 이해만 존재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이 한 사람 루디아는 유럽 전도의 첫 걸음이고 열매이다. 이 열매는 베드로의 이방인 첫 열매 때와 같이, 그들을 집으로 들여 환영한다.
- 이 맞아 들이는 환대는 그 시대의 문화상으로 보더라도,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교넬료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을 보더라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은 큰 무리와 민족과 지역의 구원을 예고한다.
- 우리의 신앙과 삶이 한 영혼을 얻고, 세우고 하는 일에 사용된다면,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긴히 사용되는 우리의 삶이 될 줄로 믿는다.
결론
- 억지스러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나의 삶의 모습 그 자체로 복음을 사는 우리가 되가를 축복한다.
- 우리의 언행이 주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통로가 되기를 축복한다.
- 마지막으로, 한 사람, 한 영혼을 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