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9-10월호
2019년 9월 27일

청년 QT – 2019년 9월 27일

카테고리
주제
말씀 · 율법 · · 행함

그러니 그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을 안겨 주었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려고, 죄가 그 선한 것을 방편으로 하여 나에게 죽음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계명을 방편으로 하여 죄를 극도로 죄답게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로마서 7:13-25

내 속에 자리 잡은 것

  1. 바울은 율법이 선한 것임을 증명하면서, 율법 때문에 죄가 지극히 죄답게 드러나게된다라고 말합니다 (13절). 그리고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줄 “안다” 라고 합니다.
  2. 문제는 아는데 자꾸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 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율법이 선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임을 또한 짚어 줍니다.
  3. 결과적으로 율법이 선한 것도 알고, 죄가 죄인 것도 아는데, 우리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내 속에 “죄”가 자리 잡고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4. 2천년 전 바울과 우리의 모습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똑바로 보게 합니다. 나의 죄를 지극히 죄 같이 지적합니다.
  5. 그러나, 알지만 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것이 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두움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부재라고 정의합니다. 죄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6. 내 안에 주님으로 채우고 더 채울 때에, 우리는 아는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