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을 안겨 주었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려고, 죄가 그 선한 것을 방편으로 하여 나에게 죽음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계명을 방편으로 하여 죄를 극도로 죄답게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7:13-25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자리 잡은 것
- 바울은 율법이 선한 것임을 증명하면서, 율법 때문에 죄가 지극히 죄답게 드러나게된다라고 말합니다 (13절). 그리고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줄 “안다” 라고 합니다.
- 문제는 아는데 자꾸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 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율법이 선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임을 또한 짚어 줍니다.
- 결과적으로 율법이 선한 것도 알고, 죄가 죄인 것도 아는데, 우리가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내 속에 “죄”가 자리 잡고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2천년 전 바울과 우리의 모습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똑바로 보게 합니다. 나의 죄를 지극히 죄 같이 지적합니다.
- 그러나, 알지만 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것이 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두움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부재라고 정의합니다. 죄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내 안에 주님으로 채우고 더 채울 때에, 우리는 아는 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줄로 믿습니다.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